겨울 여정 / 윤영지 겨울 여정(旅精) 윤영지 조심스레 열어본 창문 섬뜩 드는 매서운 칼바람 깊숙이 헤집어들고 오늘따라 달도 별도 없는 막막한 밤에 침묵을 벗으로 삼는다 또 하나의 하루를 마무리함에 감사하고 내일 하루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며 끝 모를 기인 비탈길로 꽁꽁 언 발걸음을 내딛는다. 201..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5.01.13
피노키오 / 임의숙 피노키오 임의숙 킁킁 코가 자라요. 협박과 아양으로 매일 커져요. 거짓말요? 아무렴 어떻겠어요. 열 마디 거짓말이 1 그람의 살을 찌우는 것이라면. 불편한 코를 질질 끌고 다니더 라도. 한 숟가락 먹여야겠어요. 접시마다 모종한 꽃들이 맛깔스러워요. 환심을 사 기위해 모든 영양소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2.18
숨어있는 길 / 윤영지 숨어있는 길 윤영지 언제나 있어왔지 어딘가에 단지 못 보았을 뿐이지 아니 안 본 걸까 가시덤불이어서 못 본 척 너무 가파라서 안 본 척 그런데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네 어느 곳이든 어떤 길이든 뚫려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가야하네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름 뒤에서 밤하늘 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2.14
겨울꽃 / 임의숙 겨울꽃 임의숙 그만, 꽃을 보고 말았습니다 문밖의 세상은 하얗고 하얘서 무관심마저 하얘서 얼음 속에 피었습니다 첫 발을 넣는 순간, 우두둑 묵직한 향기가 부서졌습니다 묻어둔 불씨를 틔우기 위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뚝 뚝 끊어진 연기의 행방은 아궁이의 불안으로 어지러웠습니..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2.10
자화상 / 임의숙 자화상 임의숙 나는 미움과 질투, 불만과 욕심덩어리 산뜻한 웃음으로 추한 진실을 덮어버리지 거울의 각질을 벗겨 내지 못 하는 얼굴아 한 알의 사과를 베어 먹으며 희망이란다. 삶아 삶아 나는 살아야지, 살아 가야지 늙은 마녀보다 더 지독한 가면을 쓰고 사과나무를 심는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1.22
쉘터에서/ 최양숙 쉘터에서 최양숙 쉘터 마당에 들어서면 길길이 뛰면서 짖어대는 너의 동료 중 독방에 점잖게 앉아 동요하지 않는 눈길이 있다. 세상을 관조한 듯 너의 얼굴은 창살 밖의 얼굴이다. 바닥조차 창살인 이곳은 이름만은 따듯한 보호소지만 실은 사형선고를 받기 전의 유치장이다. 죄명은 사..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1.06
가을 / 임의숙 가을 임의숙 작은 웅덩이에 잎이 떠 다니면 가을이다, 나는 잊기도 하고, 잊은 적이 없는 것 같아 건너 뛰지 못하고 돌아서 간다 가난한 시간들이 모이면 정말 가을이다, 아버지 풍성한 들녁 일 마치고 돌아와도 쌀독은 캄캄하다 고인 배고픔만 빈 바가지로 떠 다니는 아버지의 가을이 사..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10.16
귀향 / 송 진 귀향 송 진 팡파르의 금속성 여운이 가시기 전에 나는 나를 완성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에서 종착점이 바라다보이는 갓길에서 잠시 숨 고르는 사이 내가 아닌 나에 대하여 최대한 애정을 머금고 내가 밀어낸 내가 내가 버린 여자의 남루한 옷에 가려진 흰 속살을 그리워하는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9.30
선 낮잠 / 윤영지 선 낮잠 윤영지 잠시 눈 감은 사이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두둑 두둑-“ 심장 박동과 보조 맞추며 눈꺼풀을 덮는다 예상치 못했던 현실에 부딪히던 현기증 울렁거림이 초침과 맞추어가는 빗소리에 차츰 잦아든다 잠시 그러나 포근한 외부와의 단절 눈을 떠 창밖을 보니 나뭇잎 끝으..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9.26
이별 / 임의숙 이별 임의숙 그리움이란 얼마나 먼 길이던지요 기다림은 등 뒤에 두고 왔습니다. 별꽃이 터진 하늘에는 강물이 숨죽여 흘렀습니다 꽃잎의 파편들 씻기고 깎이는 계절마다 묵묵히 달은 등불을 밝혔습니다. 조약돌은 얼마나 먼 길을 왔을까요 미끄럽고 몽롱한 겉가죽 속 깨지지 않는 단단..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