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꽃
임의숙
그만, 꽃을 보고 말았습니다
문밖의 세상은 하얗고 하얘서 무관심마저 하얘서
얼음 속에 피었습니다
첫 발을 넣는 순간, 우두둑
묵직한 향기가 부서졌습니다
묻어둔 불씨를 틔우기 위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뚝 뚝 끊어진 연기의 행방은
아궁이의 불안으로 어지러웠습니다
바퀴의 두 줄을 양손에 쥐고 돌아오던 길들이
아무일 없던 것처럼 하얗게 지워진
속눈썹에는 매달린 이슬방울들이
끙끙 앓는 잠이 무거워
눈물은 짜디짜게 검었는지 모릅니다
모락모락 안개가 숨어들던 털신발이
겨울과 가난은 한 계절일 것이라고
아버지의 검은 씨앗을 다독이다가 그을린
생각들은 불티로 꺼 버렸습니다
가슴에 담지 말아야 할 향기들
마당 가득 잿빛으로 뿌렸습니다.
계절에 마을을 두고 층층이 옮겨 심은 화분에는
흉내내는 꽃들이 곱게 피었습니다
눈속임이라는 거 알면서도
그 꽃을 사랑했습니다.
소금꽃
하얗고 하얘서 밤을 걸었던
그의 발자국이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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