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94

|컬럼| 118. 소녀와 숙녀

소녀와 숙녀 바람 부는 가을날 맨해튼 중부쯤 어느 북적거리는 레스토랑 같은 데서 화장실을 가노라면 배설행위의 남녀 유별이라는 도시적 질서와 시책 때문에 자신의 성(性)을 명심하며 도어를 확인해야 한다. 공자왈,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치마와 바지를 단정하게 입은 만화 같은 아이콘을 힐끗 체크하지만 굳이 'Ladies' 혹은 'Gentlemen'이라는 텍스트가 지성인들의 분별력을 도와준다. 숙녀나 신사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배설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꼭 신사와 숙녀라야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은 인류 인권위원회에 회부돼야 한다. 근래에 위선을 싫어하는 풍조에서 'Women'과 'Men'이라고 쓴 간판도 허다하지만. '숙녀'와 '신사..

|컬럼| 117.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Monday, Monday, can't trust that day/ Monday, Monday, sometimes it just turns out that way/ Oh, Monday morning, you gave me no warning of what was to be/ Oh, Monday, Monday, how could you leave and not take me// 월요일, 월요일을, 믿을 수가 없어요/ 월요일, 월요일은, 가끔 그렇게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오, 월요일 아침에, 당신은 나한테 어떻게 될 거라는 경고를 하지 않았어요/ 오, 월요일, 월요일에, 어떻게 그렇게 나를 붙잡지 않고 떠나는 거예요// 이 노래는 1966년에 히트 친 'The Mamas and the Pap..

|컬럼| 116. 폼생폼사

폼생폼사 초등학교 때였는지 가장 기초적인 기하학을 배우던 마당에서 삼각형, 사각형 같은 품위 있는 한자어에 마름모꼴, 사다리꼴처럼 순수한 우리말을 처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꼴'이라는 단어는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라는 학설도 있다. '꼴'은 한자어 골(骨)이 경음화 된 발음이라 하니 그것은 마치도 '골통'이 '꼴통'으로 변천한 언어의 변천사와 진배없다. 상대하기 싫은 놈을 향하여 '저 놈은 꼴도 보기 싫다'라고 뇌까리는 우리의 말 습관은 또 어떤가. 당신의 언어감각이 잠든 사이에 '닮은꼴'에서처럼 중립적으로 쓰이는 '꼴'의 뜻이 어찌 그리 부정적으로 변했는가. 궁금하던 차에 사전을 찾아봤더니 '꼴'의 뜻이 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혹은 어떤 형편이나 처지 따위를 낮잡아 이르는 ..

|컬럼| 115. 아홉이라는 숫자

아홉이라는 숫자 당신은 고양이가 아홉 번의 생(生)을 산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전설 속의 허기진 고양이가 어떤 집에 살금살금 들어간다. 접시 위에 배 고파하는 아홉 명의 아이들을 위해 준비 된 아홉 마리의 생선이 놓여 있다. 얌통머리 없는 고양이는 그 아홉 마리의 생선을 냠냠 짭짭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운다. 다음날 불쌍한 아홉 명의 아이들은 배가 고파 죽고 고양이 또한 배가 터지게 먹은 포식의 결과로 죽는다. 이 사실을 안 신(神)은 노발대발해서 고양이로 하여금 하늘에서 땅까지 아흐레 동안 떨어져 죽게 만든다. 지금도 고양이는 그 아홉 마리의 생선이 뱃속에서 하나씩 죽어 가도록 아홉 번을 죽어야 비로소 종국에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끈질기고 저주스러운 삶을 산다 한다..

|컬럼|494. 황야의 7인

황야의 7인 --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서.(1882) 1960년 서부영화 ‘Magnificent Seven, (직역으로) 멋진 7인’을 인터넷에서 다시 본다. 우리말 제목은 ‘황야의 7인’. 의기투합한 7인의 총잡이가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는 멕시코의 한 마을을 구출하는 줄거리. 요즈음 내 SNS 곳곳에 올라오는 명언에 심취한다. 차제에 내가 금과옥조로 삼는 명언들을 많이 남긴 7명을 선출한다. ➀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화가, 판화 제작자, 신비주의자, 낭만파 시인.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명언은, “무절제의 길이 지혜의 궁전에 도달한다.” 그의 ..

|컬럼| 114. 호칭이 무엇이길래

호칭이 무엇이길래 의사, 간호사, 목사, 약사, 미용사, 요리사 할 때 쓰이는 '사'자는 한결같이 '스승 사(師)'임을 당신은 알고 있으리라.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남들을 가르치는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병아리 '감별사'에서도 같은 '스승 사'자를 쓴다. 서슬이 시퍼런 검사(檢事)와 판사(判事)에서는 둘 다 '일 사(事)'를 쓴다. 반면에 변호사(辯護士)에서는 '선비 사(士)'자다. 검사와 판사는 일꾼(?)이고 변호사는 선비라는 이론이다. 무사(武士), 석사(碩士), 박사(博士), 운전사(運轉士)도 다 '선비 사'를 쓴다. 어릴 적 즐겨 먹던 비행기 과자처럼 생긴 사(士)자를 살펴보면 픽 웃음이 나온다. '선비 사'는 '열 십'자 밑에 '한 일자'가 합쳐서 된 회의문자이기 때문에 '하나를..

|컬럼| 113. 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

신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 TV에서 기상대원들이 험악한 날씨를 예측할 때 한결같이 "It's going to be nasty."라 한다. 듣는 사람들의 간담이 좀 서늘해지는 말이다. 'nasty'는 14세기 초에 고대 불어에서 '더럽다, dirty, unclean’는 뜻이었고, 날씨가 사납다는 말로 1634년에, 성질이 더럽다는 의미로는 1825년에 쓰이기 시작한 아주 강도 높은 단어다. 영한사전에는 더러운, 외설스러운, 심술궂은, 고약한, 따위로 나와있다. 놀부나 뺑덕어미의 성격장애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깨끗함을 선호하고 더러움을 피하려 한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성향이라기보다 모든 동물들의 DNA에 각인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영리한 진도개는 배변 후에 뒷발질을 해서 자..

|컬럼| 112. 인간, 인터넷 그리고 간첩

인간, 인터넷 그리고 간첩 'interest'는 14세기 말경 라틴어와 고대불어에서 '중요하다'는 뜻이었는데 더 파고 들면 'inter(between)'와 'esse(to be)'라는 두 의미가 합쳐진 단어. 'interest'는 존재하는 대상들 사이의 스페이스를 지칭한다. 대상보다는 그들의 사이가 중요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우리말에서 인간(人間)이라는 말이 사람 자체를 뜻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間)를 뜻하는 것이나 비슷한 이치다. 'interest'가 금전적인 차원에서 이를테면, 지금 당신의 세이빙스 어카운트 (savings account)의 이자(利子)를 뜻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였고, 관심이나 재미라는 뜻으로 처음으로 확장된 것은 한참 후 1771년이었다. 이자율이라는 본격적으로..

|컬럼| 111. 기(氣) 혹은 끼

기(氣) 혹은 끼 옥편은 기(氣)를 '기운 기'라 풀이한다. 기분(氣分)이 좋거나 나쁘다 할 때도 같은 한자가 쓰인다. 기분의 '분'은 '나눌 분'이니 싫건 좋건 다른 사람과 기를 함께 나눈다는 말. 근래에 '행복 바이러스'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영어로 기분을 'feeling'이라 하지. 'feel'은 고대영어에서 '만지다(touch)'는 뜻이었고 그 보다 5,500년 전 경에 쓰이던 언어로 추정되는 초기인도유럽어로는 'feel'을 'pal'이라 했는데 '가볍게 때리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파악한다는 뜻으로는 16세기 경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1930년대 초에 남녀 간에 성적인 의도에서 서로의..

|컬럼| 110. 늑대와 곰

늑대와 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건국신화에는 동물이 잘 등장한다. 일연(1206~1289)이 세밀하게 묘사한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만 해도 그렇다. 인간 세상에 뜻을 둔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이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삼천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온다. 그런데 그가 기거하는 동굴에 며칠 후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딩동! 하며 초인종을 눌렀던 것이다. 그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표명한다. 환웅은 신령한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만 먹고 100일 동안 햇볕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 한다. 곰은 환웅이 시킨 대로 인간 여자로 변하고 성급한 호랑이는 '힘들어 못해먹겠다'며 동굴을 뛰쳐나온다. 웅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남자가 당시에 없었다. 그러나 맹렬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