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휴식 / 윤영지 막간 휴식 윤영지 일 갔다와 입은 옷 그대로 침대 위에 대각선으로 누워 삐딱하니 고개 들어 창을 보니 양쪽 커튼 그림자 사이로 길다랗게 밝은 유리창 드러나는 파아란 하늘, 조그만 아기 구름들, 그리고 양 옆으로 드리워진 초록 나뭇잎들 하늘, 하늘, 높--은 하늘 드디어 막혔던 숨이 내쉬어진다 쉴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09.04
선택 너머 / 송 진 선택 너머 송 진 올림픽 국립공원 깊은 숲 속에서 쓰러진 나뭇등걸에 돋아난 작은 방석만한 버섯과 마주쳤다. 윗면의 연한 갈색엔 세도나 흙빛의 경이로움 같은 게 어른거렸고 광어의 뱃살같이 포근한 밑면은 숲 속 가득히 팽창한 초록에 주눅이 들었는지 첫날밤 신부처럼 은밀하였다 독을 품고 있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09.04
게장을 담그며 / 최양숙 게장을 담그며 최양숙 집게를 갖다 대자 온 다리를 허우적거린다. 바다를 떠나고 개펄에서 올리운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차곡차곡 쌓여서 죽은듯 담겨 있다. 집 떠난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주말에 오겠다는 전화 속의 목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허둥대는 몸짓으로 분주하다. 긴 집게로 싱..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08.31
고갈 / 윤영지 고갈 윤영지 그 옛날 이름 없는 석공이 끌과 망치로 불볕에 비지땀 흘리며 화강암을 쪼개낸다 돌과 금속의 튕김에서 울리는 공명이 시퍼렇게 서럽다, 산사의 염불에 향내가 퍼져난다 끌이 단단한 표면에 박힐 때마다 퉁겨나는 나의 두개골, 하이얀 삶의 조각들, 산산조각난 파편 그가 쪼개어낸 것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08.27
언덕을 오르다가 / 김형오 언덕을 오르다가 김형오 언덕 히말라야 무턱대고 기어오르라고 세워놓은 게 아니다 달마저 보름걸이 더듬어 뜨라고 길 될 만한 길목마다 눈비 뿌려 꽁꽁 얼려 놓았다 자꾸 미끄러져 내리더라도 나이아가라 골짜기에서 혼자 즐겁게 울지 말라고 물 언덕 우습게 덤비지 말라고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