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 임의숙 오빠 임의숙 길을 가다 마주친 뒷모습에서 걸음걸이에서 입고 있는 잠바에서 푸르르 오월의 진초록이 떨어지는 향을 맡습니다 가장 진한 향은 얼굴에서 묻어났습니다 깍두기 머리에서 홑겉풀 눈에서 코 아래 사마귀점 하나 미소짓는 버릇까지 사각이면서 밉지않은 측은하게 끌리는 이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1.05
모래불 / 윤지영 모래불 윤지영 같이 갈수 없다 말했는데 당신은 말이 없다 내가 슬퍼하지 않는 동안 눈치없는 표정들이 당신 입술위에 돋아 제 각각 다른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이럴 때 당신의 눈빛은 조금더 직각이다 나는 모래로 만든 옷을 입고 단단함을 뽐냈으며 몇번의 추위가 왔었지만 다시 모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1.06
천사를 기다리며 / 임의숙 천사를 기다리며 임의숙 둥 둥 둥 새들의 빈 집에서는 북이 울었다. 불타는 나무의 파편들이 떠 다닌다 바람은 울렁이다 황달이 들었다 전염병이라지, 죽은자와 산자의 모서리쯤 되는 이 계절은 가끔은 잊고 살았을 빈 방에는 천사와 나란히 누워 두 달을 함께 살았다는데 입에서 입으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1.06
가을앓이 / 전애자 가을앓이 전애자 가을비가 창문을 도리질하면서 심장끝에 달린 잎새를 건드린다. 바람이 열어 놓은 꽃들이 젖어 부부 냄새가 향기로 바뀐다. 정답이 없는 세상속에서 외계인이 아닌 외계인이 되어 그들이 떠드는 소리와 행동에서 자연물들은 존재를 자랑했지만 곁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28
늙은 책 / 김가은 늙은 책 김가은 용커스에 사는 시인의 책장 속에서 묵은 책 한 권 뽑아 드니 책장 넘길 때마다 신경통 앓는 소리 흐린 날 물기 깊이 깊이 쌓이고 쌓여서 바랜 종이는 물때 앉은 고인 웅덩이 처럼 늘어져 몸집이 부풀어 버렸다 청춘의 푸른 바람 지나 보내고 아직도 사랑타령하기는 객쩍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25
멀고도 가까운 중동(中東) 이야기 / 윤영지 멀고도 가까운 중동(中東) 이야기 윤영지 내 아이의 무사함에 한 숨 돌릴 때 또 다른 젊은이의 어미는 가슴에 눈물을 묻으며 멍이 든다 너무도 머언 다른 세상의 이야기 믿고 싶지도 바라고 싶지도 않은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들이 지구 저 편에서는 계속 꼬리를 물고 대답없는 물음표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23
환. 상. 통. 신. / 김가은 환. 상. 통. 신. 김가은 기계가 온몸을 흔들어대며 통신을 하고 있다 우주를 통해 나의 환상 통을 건드리며 두어 달 묵혀 두었던 집에 들어와 온기를 넣으며 먼지를 닦는다 세상에 티끌로 삭아 날아 가지 않는 것은 없으니 한자리에 박혀 있는 책, 책상, 옷들도 무언가를 불어 보내며 부피..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18
소리의 파도 / 김가은 소리의 파도 김가은 도시에 산다는 것 목화 이불대신, 소리를 덮고 밤마다 해저에서 웅 웅 앓으며 잠이 드는 것이다. 쇠덩이 구르는 소리 초라한 몸뚱이 위를 떠다니며 파도를 일구고 낮아진 옅은 숨결 가르며 철썩인다 하얗게 물기 빠진 육신은 점점 더 모래톱에 닿을 듯 얇아지고 고무,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18
진통제 / 윤지영 진통제 윤지영 대지의 끝에 매달린 초록이 힘겹다 그 가벼움의 뼈마디에서도 세포가 분열하고 여름내 달궈진 울음 사이로 진통이 시작된다 자고 나면 수북이 쌓이는 말들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하는 일들이 내게 올 것이다 이 계절은 금지된 표지판 앞에서 가장 쉬운 일 하나 던져놓고 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10.05
여름이 가고 / 임의숙 여름이 가고 임의숙 방울이 스며들자 그림자가 짙어졌다 가끔은 잊은 듯이 당신은 쌍무지개 띄운 얼굴로 웃다가 물컹한 방울로 굴렀다 나는 젖느라 눈물만 보았을 뿐. 바람의 지문을 따라 가버린 지금 당신이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이제야 듣는다 간절함이 쉬어버린 마른 울음소리 가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