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부끄러운 날 / 임의숙 혼자 부끄러운 날 임의숙 가장 빛나는 것이 가장 돋보이는 것이 가장 커 보이는 것이 그에게 있습니다 문지기 영감 호두나무 보다 24 번지라는 우아한 글씨체 보다 맥스의 반가운 꼬리 보다 아름다운 것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부러워 하는 것이 그 아름다움을 갖고 싶어 하는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8.09
노환 (老患) / 윤영지 노환 (老患) 윤영지 일년의 가운데 한 토막을 잘라 뉴욕에서 서울로 옮겨놓았다 "톡 톡 톡"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앞서는 아버지의 소리 범접치 못할 기세의 기골장대 백호 뼈 마디마디 터져나오는 비명 홀로 삭이시고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포효 옥죈 가슴으로 쥐어짜이지만 그래도 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8.02
타운하우스 / 임의숙 타운하우스 임의숙 막 여름이 익어가는 그늘에서는 태연하게 손가락을 핥는 아저씨의 말투는 바베큐쏘스만큼 달콤했지만 돼지갈비에 지글거리는 기름들이 먹먹하다 까맣게 불판이 세긴 문신 자국은 6개월이라는 아저씨의 고백을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그었고 그늘은 탈출할 수 없는 철..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5.15
길거리 꽃나무 하나 / 윤영지 길거리 꽃나무 하나 윤영지 언제인지는 몰라요 허리케인이였는지 숱한 폭설이였는지 그 많던 가지들이 다 꺾여나갔어요 밑둥 위에 두 세개만 짧막히 남기고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네요 다 죽었는지만 알았는데 가지 하나에 소식이 왔어요 나도 모르는새 세 송아리 겹벚꽃이 피어났네요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5.05
시간의 축적 / 윤영지 시간의 축적 윤영지 선명했던 나뭇가지 끝이 어리어리 안개 서리고 전화 너머 또록했던 말소리가 앞뒤 끊겨 아득히 멀어져 간다 마음은 고향 땅 벌판을 가로질러 높은 산도 단숨에 오르내리는데 산책길도 힘겹고 조심스러운 오늘 나도 한 때는 푸른 기상 하늘 찌르던 젊은이였소 나도 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3.23
겨울 자작나무 / 송 진 겨울 자작나무 송 진 질펀한 망자의 눈물에 갇힌 채 하늘을 향한 너 먼 가지부터 붉은색이 감돌면 환한 어둠을 밝히는 너의 창 반짝이네 토해내지 못한 주검들 새로운 묘지를 위하여 끝없이 자신을 허무는 아나키스트 빈 곡간을 기웃대다가, 무심한 다람쥐들 헛손질하고 돌아가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3.14
K에게- 어느 봄날 / 임의숙 K에게 - 어느 봄날 임의숙 젖은 기침을 털어내고 바람은 온기가 돌더라 부모님 기일이라는 말 때문에 며칠을 흔들리던 나무에는 손금이 자라더라 햇볕이 지나는 자리마다 새들은 부드럽게 애정금을 짓더라 빗방울이 스미는 마디마다 새들은 곧게 생명금을 짓더라 봄을 타고 오르시던 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3.13
두견새의 봄 / 윤영지 두견새의 봄 윤영지 부정을 부정한 긍정은 이미 긍정이 아닌 것을 비관을 눈가림한 낙관은 결코 낙관일 수 없는 것을 아무리 뇌아려도 옆구리 비집고 나오는 푸념거리 헛웃음도 금세 말라버리고 알량한 인내도 바닥을 친다 순백으로 덮인 눈 아래, 엄연한 현실이 오만가지 색깔로 포복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3.01
겨울능금 / 임의숙 겨울능금 임의숙 보세요, 저 찬란한 겨울의 능금들 수 없이 떨어지던 씨앗들이 꽃을 피웠어요 나무 밑둥까지 스며들며 가지를 타고 오르는 동안 간간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어요 누구의 목마름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꽃몽우리가 열리기 전 줄기 사이를 다람쥐가 착한 아이처럼 착..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2.24
하루의 끝자락 / 윤영지 하루의 끝자락 윤영지 거울 속에 오늘이 보였다 막바지 치약을 끝부터 자근자근 눌러 빨간 치솔 위에 얹어놓고 얼룩졌던 하루를 하얀 거품으로 벗겨낸다 순하면 지들 맘대로 휘둘러도 되나 억울하고 생트집 잡히던 순간을 떨어낸다 몇 십 명이 함께 일하다보면 지 성질 관리 안되는 다혈..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