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수다, 담론, 게시 97

|담론| 나무와 성격에 대하여

“성격은 나무와 같고 평판은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는 우리들의 생각이지만, 나무는 현존하는 실체다. -- 아브라함 링컨 우리는 나무의 진정한 특성을 실제로 파악하지 못한다. 나무 그림자를 통해서만 나무를 인지할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연극 놀이…"라고 이 생각을 넌지시 말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사람의 성격을 햇빛이 있거나 조명의 각도에 따라 투사된 그림자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이, 사람의 성격도 드러나지 않으면 알아내지 못한다. 나를 에워싼 빛이 빚어내는 다양한 형상의 내 그림자를 거듭해서 본다. ‘남들’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근본적인 빛의 원천이다. 그들이 나의 조명 환경이다. '인간 환경'! ..

|담론|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장작불, 혹은 가오리연

-- 「우리 詩」2010년 2월호 (178~182 쪽) 목 속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어요 목 속으로 봄바람이 연거푸 스며들어요 목 속 어디엔가에 내 유연한 유년기가 실개천처럼 흘러넘쳐요 오밤중에 겨울 숲 속을 헤매는 목이 짧은 동물 그림자가 아른거려요 나는 그 귀여운 동물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분명치는 않지만 아주 분명치는 않지만 불 기운이 트럼펫소리보다 더 귀에 따가워요 샛별 같은 갈망의 불씨가 탁탁 튀잖아요 오, 불길이 가오리연처럼 미친 가오리연처럼 차가운 하늘로 치솟고 있어요 나는 뒤늦은 깨달음의 허리띠를 조여 매고 푸짐한 털목도리로 목을 감쌉니다 함박눈이 공손히 내리는 3월초에 나는 아무래도 당신의 침범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요 전문 달포 전 3월 초에 아주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아직도 감기는 ..

|잡담| 날씬한 詩와 뚱뚱한 詩

그럴만하게도 됐다. 말을 삼가는 사람보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듯이 시인들도 詩에서 말을 많이 하는 시인들이 득세를 하는지라, 옛날 詩에 비해 요새 詩는 한 행에 쏟아지는 글자 수가 거의 30자를 넘는 수가 많아. 그래서 詩가 무지기 뚱뚱하고 비대해진 느낌이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 날씬한 詩의 시대가 거하고 뚱뚱한 詩의 시대가 내했도다. 그토록 안스럽게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간결하고 함축성 있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차분하게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집중력은 다 없어지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말만 귀에 들어 온다는 말이지. 한 번만 해도 무난하게 귀에 들어 올 수 있는 내용을 한 열 번쯤 이리저리 말을 바꿔가면서, ..

|잡담| 존경도와 친근감

어젯밤 잠결에 이런 생각을 해 봤지. 뭐냐믄, 우리가 말을 할 때 늘 문장의 끝 부분에 가서 어미(語尾), 말꼬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데 신경을 무지하게 쓴다는 사실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금방 내가 끝낸 말도 신경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하고 말하면 아주 쌀쌀맞을 정도로 듣는이에 대한 공식적인 경의를 표출하겠지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다, 하면 사람이 당당하고 권위가 있게 들리는 거 당신 알아? 그러니, 내가 말을 어떻게 끝맺음을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내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 금방금방 감정상태가 달라질 거야. 달라질 겁니다, 달라질 거라구. 달라지는 거 있지. 당신도 양심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보라. 사람 마음이 얼마나 재빠르고 간사해야 한국말을 제대로 제때제때 격에 맞게 할 수 있을 거냐 말이..

|잡담| 아버지의 방패연에 대한 추억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 나이 정도였을 때 나는 철부지 초등학교 2학년이였다.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듯이 지금 내 아들이 또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당신이 듣기에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내 아비와 나와 내 자식이 얼키고 설키는 것 같이 보이나? 아니지. 세 제너레이션의 서열이 분명한데 무슨 말씀 그런 말씀, 하면서 당신이 약간 눈을 치켜 떠도 나는 크게 할 말이 없는 걸.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멘델의 완두콩 부모관계 족보 그림처럼 위 아래가 분명해야 동물왕국에 대한 기본 질서가 서는 법이려니. 하여튼 그때 아버지가 대나무를 칼로 가늘게 깎아서 내 면전에서 방패연을 만드셨어. 어린 나이에 놀랐지. 아버지는 요술쟁이! 겁나는 능력을 가진 마술사! 전지전능한 내 아버지. 창호지에 달라붙은 까칠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