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능금
임의숙
보세요, 저 찬란한 겨울의 능금들
수 없이 떨어지던 씨앗들이 꽃을 피웠어요
나무 밑둥까지 스며들며 가지를 타고 오르는 동안
간간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어요
누구의 목마름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꽃몽우리가 열리기 전 줄기 사이를
다람쥐가 착한 아이처럼
착한 아이처럼 뜀을 뛰어 올라갔어요
눈동자가 시려워요
칸칸이 열어놓은 가지들의 서랍장
달빛이 얼린 문을 햇살이 미끄러지듯 열고요
만삭의 소리를 고르며 새들은 긴 계단을 내려왔어요
까르르 하얀 겹들 위엔 발자국들이 발자국들이 요란했어요
누구의 그림자였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기억은 화사하게 피어 오르는 날개를 갖고 있데요
보세요, 저 찬란한 겨울의 능금들
순백의 맛과 향으로
가지마다 무게를 달고 있어요
누구의 저울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능금은 아직 서리를 해 가지 않았는데요
고드름을 달아놓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파수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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