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겨울능금 / 임의숙

서 량 2014. 2. 24. 00:01


겨울능금

 

                                임의숙

 

보세요, 저 찬란한 겨울의 능금들

수 없이 떨어지던 씨앗들이 꽃을 피웠어요

나무 밑둥까지 스며들며 가지를 타고 오르는 동안

간간이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어요

누구의 목마름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꽃몽우리가 열리기 전 줄기 사이를

다람쥐가 착한 아이처럼

착한 아이처럼 뜀을 뛰어 올라갔어요

 

눈동자가 시려워요

칸칸이 열어놓은 가지들의 서랍장

달빛이 얼린 문을 햇살이 미끄러지듯 열고요

만삭의 소리를 고르며 새들은 긴 계단을 내려왔어요

까르르 하얀 겹들 위엔 발자국들이 발자국들이 요란했어요

누구의 그림자였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기억은 화사하게 피어 오르는 날개를 갖고 있데요

 

보세요, 저 찬란한 겨울의 능금들

순백의 맛과 향으로

가지마다 무게를 달고 있어요

누구의 저울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능금은 아직 서리를 해 가지 않았는데요

고드름을 달아놓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파수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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