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타운하우스 / 임의숙

서 량 2014. 5. 15. 00:07


타운하우스


                       임의숙



막 여름이 익어가는 그늘에서는 태연하게

손가락을 핥는 아저씨의 말투는 바베큐쏘스만큼 달콤했지만

돼지갈비에 지글거리는 기름들이 먹먹하다 까맣게

불판이 세긴 문신 자국은 6개월이라는 아저씨의 고백을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그었고 그늘은 탈출할 수 없는 철창 같아서


비상구를 발견했어요. 그건 지난 이야기들. 위로는 때로 죄를 짓는 일.

거짓으로 행복해지는. 진실은 너무 심각해 사절하는. 우는 사람과 웃는 

사람들의 극과 극의 차이. 격려의 차원에서는 모두 동의 합니다. 

타운하우스의 얼굴처럼 닮아 있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정말 빨강을 좋아하셨나봐요. 보스턴의 양말야구단의 깃발이

문패로 걸려있고요. 경기 당일에는 양말을 신어요. 입가에 달린 욕들은

맥주거품이고요. 지는 경기는 늘 아나운서들 때문 이라는데요. 아저씨

의 발톱에 빨간 메니큐어를 발라주고 싶은 농담이 콜라의 트림처럼 자

주 튀어 나왔죠.


자네의 늙은 야생마가 난동을 부리다 끌려오던 날 녀석의 일그러진 모습

에 화가 났던게 사실이야. 나라면 질주의 본능을 길들이는데 어렵지 않

았을 거야. 내 위스키의 농도를 알고 있으니까. 제기랄. 도살장으로 실려

나가던 서운함도 잠시였어.빨간 산양을 타고 나타난 자네가 부럽기도 하

고 멋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질투라는 생각은 말게. 자네는 좋은 이웃이

고 친구라네. 이 개 같은 상황이 싫어. 난.


하느님의 보살핌이 함께 하길. 내 잊지 않을 걸세......


달이 폭설에 묻히고 겨울은 쓸어도 쓸리지 않는다 산양은 

울지 못하고 하얗게 털갈이를 견디는 두 뿔엔 울음이 구부러져 있다 

소리없는 겨울의 중심부를 확 자르듯 앰브런스가 오고, 갔다.

그럴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봄이 오고 

태연하게 열린 창문에는 투정과 악담이 다정하고 몇몇 기분 좋은 

거짓말처럼 빨간 산양이 사라졌다.  

'김정기의 글동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부끄러운 날 / 임의숙  (0) 2014.08.09
노환 (老患) / 윤영지  (0) 2014.08.02
길거리 꽃나무 하나 / 윤영지  (0) 2014.05.05
시간의 축적 / 윤영지  (0) 2014.03.23
겨울 자작나무 / 송 진  (0) 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