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 윤지영 나의 왼쪽 윤지영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걸까 한 몸에서 나고 자라 지구의 남과 북처럼 늘 계절이 다른 나의 왼쪽과 오른쪽 쉼 없이 내 몸을 돌고 있는 따뜻한 피는 어두운 목덜미 혹은 오른쪽 발끝에서 왜 남몰래 마음을 바꿔 되돌아 가는 건지 좀처럼 온도를 높이지 못하는 땅 무슨 명약..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24
엄니 전 상서 / 송 진 엄니 전 상서 송 진 그간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유 저승에서는 아직도 이런 인사치레가 유용할지도 모르것네유 저도 저승 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시유 저승에 갔을 때 행여 울 엄니가 저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저에게는 몽고반점도 없으니 에구머니나, 그걸 확..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21
대기자 / 윤지영 대기자 윤지영 그 동안 고마웠어요 아직은 붉은색이 되지 못한 당신을 정중히 모십니다 우리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은 건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몸 속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내 이름들을 찾고 있지요 앞에 놓인 유리거울을 치우지 마세요 당신이 데려온 시간들은 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13
치과 의자 / 최양숙 치과 의자 최양숙 염증을 가렸던 립스틱을 지운다 내 안의 깊은 곳을 드러내야 할 때 눈을 감을까 뜰까를 고민한다 세속의 욕망을 간직한 티끌은 언제나 또 그만큼 그 자리에서 신경을 건드린다 거품 가득한 수세미로 떠오르는 얼굴을 지운다 아스팔트를 파내는 치열함으로 기억을 새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12
감꽃향 나는 밤 / 윤영지 감꽃향 나는 밤 윤영지 아득한 기억 저 편에서 지붕 위 톡톡 떨어지던 감꽃 소리로 봄이 튀어오릅니다 문창살 창호지 뒤로 너울너울 살풀이하던 감나무 가지들 달빛이 살포시 잦아드는 창호지 너머 한없이 춤 추며 올라가던 수줍은 꿈망울 오늘따라 시원스런 밤바람을 들이마시며 토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03
어느 시간의 화석 층 / 송 진 어느 시간의 화석 층 송 진 회식 자리에 끌려 나와 그녀는 오리고기를 주문한다 잔잔한 호수의 파문이 일으키는 이 아득한 간극을 항암 치료받는 남편은 날마다 토해내고 있는 걸까 가냘픈 파장에 조각난 난파선이 입술에 부딪칠 때마다 차마 언어가 되어 건너지 못한 비듬들이 석순으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4.02
봄밤 / 최양숙 봄밤 최양숙 봄밤에 점자를 읽는다 불을 밝히면 잠이 달아날까 벽을 더듬는다 일상에는 보이지 않던 것 손으로 형체를 그린다 숨기고 있던 요철이 몸으로 다가온다 의미를 몰랐던 것이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둘러싸고 거기에 있었지 쉼 없이 시신경에 얹히던 사물이 내게 안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3.28
유빙구름 / 임의숙 Normal 0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MicrosoftInternetExplorer4 유빙구름 임의숙 한 삽씩 퍼 올린 겨울이 구름이다 누구는 구름동굴 속에서 살았다 했고 누구는 구름다락에 살았다 한다 달집 창문에 점등이 겨울 저 편으로 소멸하던 날, 어둠은 생생하게 번져 왔다 그렁그렁한 사슴의 눈망울이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3.13
루트4 풍경 / 송 진 Normal 0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MicrosoftInternetExplorer4 루트4 풍경 송 진 빵 부스러기를 향하여 몰려든 개미떼처럼 전리품을 챙긴 경계가 가든스테이트 프라자를 차곡차곡 허문다 거북이보다 서러운 상주 없는 행렬 모텔 이름으로 제 격일 낙원동 떡집 같은 리버사이드 신기루인 듯 낯선..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3.13
유기농 / 송 진 Normal 0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MicrosoftInternetExplorer4 유기농 송 진 관광버스가 피워 올리는 먼지는 바람에 밀려 길 뒤편 새우의 납작한 집에 불꽃처럼 떨어진다 담장 위에 널려 희롱 당한 빨래들 속으로 열기에 찌든 코코넛 냄새가 스며들고 폐차의 유리창에 휘갈긴 낙서가 음란스러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