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삶은 달걀 껍질 벗기기 나는 갈등의 알맹이를 찾는다 병아리 한 마리가 날개를 부르르 떠는 순간입니다 기나긴 염색체의 행렬이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담은 채 황야를 걸어가는 모습이기도 해요 당신의 개인정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군 누군가 갈등이 없는 삶은 시시한 삶이라고 힘차게 말한다 끓는 물을 벗.. 詩 2018.10.07
|詩| 내 눈 속의 매 널따란 뒤뜰로 활기차게 들이닥친 매 한 마리 사뿐,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나는 매정한 사냥꾼입니다 구름 걷힌 오후면 잠자리 선글라스 눌러쓰고 숲 속 깊이 들어서는 보아라 하늘에 깔린 은빛 거미줄을, 저 거대한 네트워크를 벗어나는 짐승들의 매서운 눈매를 말을 찾는 중, 말은 내 .. 詩 2018.09.23
|詩| 융털돌기 서재 밖 저만치 우두커니 서있는 떡갈나무를 손을 뻗쳐 만지려 하기가 무섭게 내 보들보들한 작은창자가 연동운동을 일으킨다 연동운동을 순수한 우리말로 꿈틀운동이라 합니다 굳이 꿈틀운동이라는 어감이 싫으면 그냥 연동운동이라 하시든지 내 보들보들한 작은창자 안쪽 벽에 널브.. 詩 2018.08.18
|詩| 눈속임 마음씨 착한 흑인 비서가 덜컥 죽었다네 무교동 낙지볶음 골목에서 치르는 장례식이다 이윽고 나는 돈 대신 도리토스 한 봉지를 조의금으로 내놓는다 도리토의 주성분이 고추장 된장 마늘이래요 더러는 울고 더러는 웃고 있다 시간과 공을 드렸지만 열매가 열리지 않고 마음만 복잡해지는 게 도리토 증후군이라더군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알뜰살뜰한 당신의 사랑도 도리토 증후군이다 손이 입으로 꾸역꾸역 전달하는 감각의 요술이었다네 이 부분이 바로 사람 허벅지 정도 크기의 토막나무를 도끼로 힘껏 내리찍는 장면을 높은 위치에서 찍은 촬영기법입니다 앞서 지적하셨듯이 도리토가 삼각형 모양으로 마구 겹치는 마음입니다 © 서 량 2018.02.10 詩 2018.02.11
|詩| 헷갈림 가을이 따스하다 가을에야 따스해진다 봄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하련만, 합의를 보는 중이랍니다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뒷마당 떡갈나무 맵시 좋고 마음 넓은 잎새들이 뿔뿔이 흩어지자는 일정에 합의를 보는 중이랍니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속살까지 따스한 금붕어들이라면 으레 그러.. 詩 2017.10.23
|詩| 달걀을 위한 명상 오래 전에도 이랬다 흔들림의 껍데기에 손을 얹고 안쪽을 알아낸다 한쪽이 살아있다 끈덕진 존재감으로 다그치는 감각의 요술 전자파장이 타원형으로 퍼져나갑니다 전자파장이 몸을 파고듭니다 전자파장이 스르르 번지다가 작동을 멈추자 중력이 활짝 젖혀집니다 달걀을 나무라지 못.. 詩 2017.08.20
|詩| 주제 멜로디 추녀에 매달린 고드름 눈물 긴 한숨 끝으로 떨어지는 수정체 공룡이 쿵 쓰러졌다가 집채만한 하품을 하며 다시 살아나는 장면 이윽고 터지는 당신 분홍색 진한 잇몸 웃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듣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주제 멜로디가 흐느끼는 순간을 사각형의 관광엽.. 詩 2017.06.10
|詩| 말끝 길게 끌기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할 때마다 당신 콧소리 뒤끝에 도봉산 산악 동호회 몇몇이서 야호 하며 소리치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건 온통 유리로 덮인 고층 빌딩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공중에서 흩어질 때 내는 소리에요 빗방울들도 여운을 남기고 싶어해 주근깨 흩어지는 진달래 꽃.. 詩 2017.04.29
|詩| 기하학 개론 마름모꼴이며, 다이아몬드 모양을 젖은 눈으로 보면, 동그라미 몇 개가 코 앞에서 아롱댄다. 젖은 눈으로 볼 때마다 사다리꼴이 꼭 이등변 삼각형 꼭대기 부분을 수평으로 절단한 모습입니다. 초롱초롱 젖은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야! 목이 뎅겅 잘린 후 지금껏 꼼지락거리는, 구약성경 .. 詩 2017.03.17
|詩| 눈 온 후에 부는 바람 소식은 늘 조용히 온다 함박눈이 창 밖에서만 내리고 있어요 당신은 가벼운 중력으로 곧이곧대로 하는 말을 짐짓 삼가면서 나랑 춤을 춰요 지금 눈이 그친 후 나무들이 통째로 흔들린다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향하여 양팔을 활짝 벌린 나무들이 하나같이 헐벗은 몸이랍니다 창 밖 어느 쯤.. 詩 2017.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