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달의 흉터** 월요일 아침 정신병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정신과 과장과 "How are you?", "I am good!" 하며 큰 소리로 떠들다가 내가 "Happy Monday!" 하니까 그놈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Ah, Monday is the worst!" 한다 나는 재빨리 대꾸한다 "That's because Monday is really Moon Day!" 달의 뒷모습을 .. 詩 2015.10.04
|詩| 질문** 열린 음악회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시간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금세 인기척이 나면서 누군가 안쪽에서 네? 하는 가을 아침에 박수를 칠 때 한쪽 손바닥이 다른 쪽 손바닥에게 고마운 마음이 전혀 없듯이 나도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별로 없어요 잡힐 듯 말듯 점점 더 크게 가까.. 詩 2015.09.26
|詩| 수건 논란* 수건은 발이 두 개인데다가 스스로의 자유의사 또한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한다 수건은 변덕을 잘 부린다 수건의 DN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수건의 변덕이 미치고 환장하게 심해진다 그런 수건의 성향에 대하여 감정을 잘 다스릴 줄 .. 詩 2015.04.12
|詩| 미리암의 쥐에 대한 오해* 미리암 귀 속에 쥐가 여럿 있어서 양쪽 귀 사이를 기어 다닌다 쥐들이 어떻게 그녀의 내이(內耳)에 들어갔나요 외부자극이 미리암 영혼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하는 메커니즘을 알아내야겠어 미리암 뇌 속에 전 남편이 설치해 놓은 전자 칩에서 지직지직 전류가 일어난다 미리암이 그와 은.. 詩 2015.02.02
|詩| 주고 싶은 마음* 눈이 큰 멜리사가 205 병동에 살면서 가끔씩 이물(異物)을 삼킨다 목걸이나 십자가를 물도 없이 삼킨다 정물화, 차가운 쟁반 위에서 몸을 서로 기대는 사과와 포도송이가 있는 그림 같은 내 정신상태를 당신에게 주고 싶었는데 마음은 풍경화일 수도 있다 큰 의미가 없는 강 언덕에 바람이.. 詩 2015.01.05
|詩| 빼앗기는 마음* 한 달에 한 번씩 205 병동 환자들은 각자 푼돈을 모아 중국 음식을 단체로 시킨다 그리고 넓은 방에 나란히 앉아 요리를 먹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네 누구도 음식 씹는 소리를 내지 않아요 어쩌나?! 혈색이 안 좋은 정신과 환자들이 부동자세로 묵묵히 입만 움직인다 이건 그들이 들리지 .. 詩 2014.12.13
|詩| 색소폰과 클라리넷** 청명한 가을날 나비잠자리 한 마리 꽃밭을 들어선다 나비잠자리 날개에 무지개가 묻어있네 나비잠자리는 한 마리에서 그친다 꽃밭에 꽃이 너무 많아 수를 세기가 힘이 들어요 나비잠자리는 어느새 커다란 잎새에 사뿐 내려앉아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솔솔바람에 몸을 맡긴다 마음껏 알.. 詩 2014.10.27
|詩| 색소폰 길들이기** 전압조정기 불량품을 돌려 주려고 전자상회 앞에 차를 세울 즈음 라디오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1악장이 흘러나온다 쇼스타코비치는 '코' 하는 음절에 악센트가 콱 들어간다 이 곡은 그가 19살에 작곡한 곡 나는 19살 때 무엇을 했나 고전형식에 막 대들면서 무조(無調)의 멜로디를 .. 詩 2014.09.22
|詩| 은근한 생각** 커다란 구름이 오른쪽 시야를 반쯤 덮는다 빗방울 몇 알 떨어진다 당신을 향한 내 마음만큼은 좀 지나치게 먹어도 괜찮으리라 믿는다 왼쪽 하늘에서 햇살이 한줌씩 쏟아진다 넓은 주차장 뒤 먼 숲으로 날아가는 내 환상은 아주 노골적이다 유약한 감성을 주제 삼아 아등바등 쓰는 시가 .. 詩 2014.06.15
|詩| 쟁반만한 눈 쟁반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라면 쟁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해 쟁반이 하늘을 바라보며 누웠다가 기립자세로 감정조절에 나선다 쟁반은 속 깊은 영혼이라네 쟁반의 마음을 보듬자면 자기 마음부터 보듬어야 해요 쟁반이 눈을 부라린다 나는 입술을 깨문다 쟁반이 꿈을 꾸는 중이야 나는 쟁반의 극심한 악몽이다 나는 쟁반의 기꺼운 악몽이다 I am your hottest nightmare I am your best nightmare © 서 량 2014.05.11 詩 201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