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냉동만두 당신의 피부는 얇디 얇다 어항 속 열대어 살갗에 물빛이 반사된다 몸이 차가워요 열대어의 내장은 참 산만해 질서가 정말 없다니까 정갈한 모피로 전신을 감싼 채 나랑 빨랑 손잡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냉동실에 들어가요 영원한 아침의 나라로, 이상해, 신기해, 저는 솔직히 흰다리.. 詩 2016.12.20
|詩| 깊은 잠 나를 헤아릴 마음이 없이 터무니없는 논평을 하느니 차라리 기분 내키는 대로 하나의 느낌만 건졌으면 싶은데 당신은 일부러 말하지 않은 사실도 사실이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진실일랑 어떡하겠어요 그럴 수는 없다면서 새하얀 팔을 흔드는 떡갈나무들의 혼성합창이 귓전을 스치는 .. 詩 2016.11.12
|詩| 막연한 느낌 오래 전서부터 그랬다 내 말 오해하지 말아라 나와 당신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몸이라고 말하는 순간 무지한 독자들 눈앞에 어떤 발칙한 상상이 떠 오를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게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발로 차지 못하는 길가에 엎드려 누운 처녀 돌멩이입니다 어쩔 수 없어요 세상 누.. 詩 2016.10.16
|詩| 다시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을이 운명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9월 초에 다시 슬며시 얼굴을 드는 여름, 그것도 한여름이 어김없이 꼭 옛날 대천 해수욕장 같은 데서 말이징 그건 정말 내 나이 11살 때 생겨난 바다를 향한 생뚱맞은 놀라움 때문이었어 뭉게구름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가 잠시 후 서슬이 시퍼렇게 .. 詩 2016.09.04
|詩| 되찾은 바다 해 뜨는 동해 잔물결보다 불결한 서쪽 바다 알몸이 더 좋다는 거 메스꺼운 열한 살 짜리 속앓이를 가라앉히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내 발바닥이 몹시 뜨거웠다는 거 알뜰한 추억을 다시금 그리워할 것이라는 예감으로 당신을 내가 살짝 놓아준 시절 같기도 하다니요 세월이 부서지는 바닷.. 詩 2016.08.12
|詩| 개구리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서 본듯한 저 반듯한 얼굴 수 천년 비바람에 씻긴 어깨뼈 개구리 뒤통수에 꼬리가 달려있네 커다란 꼬리 저건 폭풍이 심한 날 내 아버지 본적지 경기도 수원 실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승천한 용의 꼬리야 아냐, 아냐! 저건 성미 유순한 곡.. 詩 2016.07.21
|詩| 쇼팽과의 대화*** "내 행복을 좀먹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빠지면서 어떤 희열을 느꼈다." 하며 즉흥환상곡 물결치는 그늘에서 속삭이는 쇼팽을 나는 좋아해요 사자성어를 들먹이는 사람을 멀리해야 돼 그래요 일부러 저지르는 정신착란은 시답잖아요 내가 알뜰살뜰한 진실을 옮기.. 詩 2016.02.07
|詩| 화면 가득히* 생후 한 번도 머리칼을 자른 적이 없는, 5개월 채 못된 키가 내 대퇴골 정도 크기의 내 손주 딸 엊그제 찍은 내 디지털 손주 딸 사진, 바로 그 옆에 미국 나이로 쳐서 6살짜리 내가 경상도 촌 구석 초등학교 교실 앞, 나이 든 담임선생과 콩알만한 계집애 둘, 그렇게 넷이 함께 서 있다, 바람 .. 詩 2015.11.12
|詩| 김밥 생각 생각이야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어요 생각이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생각의 유연성이 나는 좋아 김밥은 한갓 뿌듯한 느낌에서 그칩니다 접시 위 콩나물과 저는 공동운명입니다 삶은 달걀 절반이 나를 힐끗 쳐다보네요 힘과 힘을 합치는 미덕도 미덕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함부로 생각과 생.. 詩 2015.10.27
|詩| 반신욕**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 -- 윌리엄 포크너 영혼을 물 속에 담근다 영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영혼은 뜨거운 동시에 차갑대요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물의 힘 새파란 우리 무의식 205병동의 멜리사는 과거를 죽이기 위하여 자신을 말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자기 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이물(異物)을 몸 속 깊이 입수한다. 내시경은 수십 번, 개복수술도 대여섯 번 했다. 얼마 전에는 작은창자의 일부분을 잘라냈다. 멜리사 배는 내장을 적출하기 위하여 과감히 갈라 놓은 희뿌연 생선 배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 의사들이 멜리사의 미친 짓거리를 전혀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를 고소하겠다고 거듭거듭 벼르고.. 詩 201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