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를 기다리며
임의숙
둥 둥 둥 새들의 빈 집에서는 북이 울었다.
불타는 나무의 파편들이 떠 다닌다
바람은 울렁이다 황달이 들었다
전염병이라지, 죽은자와 산자의 모서리쯤 되는
이 계절은
가끔은 잊고 살았을 빈 방에는
천사와 나란히 누워 두 달을 함께 살았다는데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갈에는
언니가 그리다만 입술자국이 가득하다
꼭 두 해만 살다갔다는 천사의 이름으로
한 번도 나는 너의 생을 살아보지 않았다.
생각해도 얼굴 없는 이름은
방 위에 떠 있는 회색의 천장같아
벌거벗은 그리움이 마음껏 울어본다
꼼지락거리던 발가락을 만져주었을 온기가
혈육이라는, 정이라는 것을 안다
천천히 노을의 열점이 사라지는 모서리를 지날 때
쓱 스치는 박하 향, 첫 눈이 내리고
새들의 빈 방에는
어린달이 한 참을 살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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