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책
김가은
용커스에 사는 시인의 책장 속에서
묵은 책 한 권 뽑아 드니
책장 넘길 때마다
신경통 앓는 소리
흐린 날 물기 깊이 깊이 쌓이고 쌓여서
바랜 종이는
물때 앉은 고인 웅덩이 처럼
늘어져 몸집이 부풀어 버렸다
청춘의 푸른 바람 지나 보내고
아직도 사랑타령하기는 객쩍은 나이
책갈피 아귀 사이에
간신히 뽑아낸 물길은 애간장을 휘돌아 굽이 굽이 흐르고
주머니에 넣어 둔 웃음소리 떨어질 때 마다
강가의 아스펜 잎사귀들 황금 빛으로 물들어
멀리서 되돌아 와 한 숨 쉬며 그려놓은 낙타 발자국
한장 한장 넘기는 구절에
모래 바람소리 길게 틔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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