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반신욕**

서 량 2015. 10. 13. 04:38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

    -- 윌리엄 포크너

 

영혼을 물 속에 담근다

영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영혼은 뜨거운 동시에 차갑대요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물의 힘

새파란 우리 무의식

 

205병동의 멜리사는 과거를 죽이기 위하여 자신을 말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자기 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이물(異物)을 몸 속 깊이 입수한다. 내시경은 수십 번, 개복수술도 대여섯 번 했다. 얼마 전에는 작은창자의 일부분을 잘라냈다. 멜리사 배는 내장을 적출하기 위하여 과감히 갈라 놓은 희뿌연 생선 배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 의사들이 멜리사의 친 짓거리를 전혀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를 고소하겠다고 거듭거듭 벼르고 있다. 어제 밤 멜리사는 샤워 커튼 고리 15개를 꿀꺽꿀꺽 삼킨 후 또 이물(異物)을 삼켰노라 선포한 후 이 달 들어 두 번째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물음표 모양의 샤워 커튼 고리 15개가 멜리사의 위 속에서 서로 맞부딪치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과 나의 소화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일자무식하게. 막무가내로 일자무식하게.   

 

과거의 위험수위를 상기한다

과거가 물 속에 차분히 담겨있네요

과거를 꿀꺽꿀꺽 삼키는 우리들

나는 내 체감온도가 일그러지는

당신 무의식에 뜨겁게 맞닥뜨린다

 

© 서 량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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