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
-- 윌리엄 포크너
영혼을 물 속에 담근다
영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영혼은 뜨거운 동시에 차갑대요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물의 힘
새파란 우리 무의식
205병동의 멜리사는 과거를 죽이기 위하여 자신을 말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자기 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이물(異物)을 몸 속 깊이 입수한다. 내시경은 수십 번, 개복수술도 대여섯 번 했다. 얼마 전에는 작은창자의 일부분을 잘라냈다. 멜리사 배는 내장을 적출하기 위하여 과감히 갈라 놓은 희뿌연 생선 배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 의사들이 멜리사의 미친 짓거리를 전혀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정신과의사를 고소하겠다고 거듭거듭 벼르고 있다. 어제 밤 멜리사는 샤워 커튼 고리 15개를 꿀꺽꿀꺽 삼킨 후 또 이물(異物)을 삼켰노라 선포한 후 이 달 들어 두 번째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물음표 모양의 샤워 커튼 고리 15개가 멜리사의 위 속에서 서로 맞부딪치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과 나의 소화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일자무식하게. 막무가내로 일자무식하게.
과거의 위험수위를 상기한다
과거가 물 속에 차분히 담겨있네요
과거를 꿀꺽꿀꺽 삼키는 우리들
나는 내 체감온도가 일그러지는
당신 무의식에 뜨겁게 맞닥뜨린다
© 서 량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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