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화면 가득히*

서 량 2015. 11. 12. 20:26


생후 한 번도 머리칼을

자른 적이 없는, 5개월 채 못된

키가 내 대퇴골 정도 크기의 내 손주 딸

 

엊그제 찍은 내

디지털 손주 딸 사진, 바로 그 옆에

미국 나이로 쳐서 6살짜리 내가

경상도 촌 구석 초등학교 교실

, 나이 든 담임선생과 콩알만한

계집애 둘, 그렇게 넷이 함께 서 있다, 바람 속에

 

바람이 내내 시속 100마일로 세차게 내쳐 불자 어른과 아이의 영상이 컴퓨터 모니터의 70 퍼센트 이상을 채운다 으레 어른은 갑질 아이는 을질이라니까 그러네 아니에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갑질과 을질을 하는 거에요 담임선생이 내게 을질을 하네 나는 전반적으로 갑질을 좋아합니다 으하하 무슨 짓이든 우리가 한 번 빠져들면 여념이 없어 전혀 여념이 없으면 바람의 속도가 엄청 증가한대요 알았어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거야

 

내 옆에 누워있는 내 손주 딸

얼굴로 모니터 화면을 70 퍼센트 정도

채운다, 양순하면서 야무지기도 한

키가 내 대퇴골 정도 크기의 계집애, 나를 거의

100 퍼센트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는 나도 거의

100 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녀가 나를 본다, 내가 그녀를 본다

우리는 한갓 바탕화면에 지나지 않아요 멀리서

우리를 그윽이 바라보는 저 보이지 않는 우리는 또 누구냐

 

 © 서 량 20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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