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잠 / 최양숙 푸른 잠 최양숙 어둔 밤 광풍에 가슴에 울리는 쿵 소리 뿌리는 흙을 움켜쥐었지만 땅바닥을 뒤집어놓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장을 꺼낸 채 설 수 없는 나무 새벽 어스름에 눈뜨지 못하고 혼을 나누던 작은 새 깃들지 못해 슬픈 해 그림자는 기척 없이 바람 한 줄기 잡을 수 없는 메마른 잎새의 시간 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7.16
시누이의 죽음 / 전애자 시누이의 죽음 전애자 꽃들이 열매들이 다음 생을 위하여 투신한다. 기다린듯이 달려간 남편을 보고 말도 못하고 눈빛만 보내더니 두 시간 후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놓친 유리컵이 산산조각을 내며 폭음을 낼 때 스치는 예감 환청이었는지 모른다. 물먹은 바람이 파킹장 울타리에 있는 쭉정이를 떨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7.15
어린 대숲 / 윤영지 어린 대숲 윤영지 한적한 길 운전해 내려가다 오른편에 보이는 싱그러운 연초록 어린 대숲. 대쪽같이 곧다던 뻣뻣이 단단한 통념과는 달리 야릿야릿 보기에도 상쾌히 날아갈 듯한 이파리들이 콧노래 부르며 연한 줄기에 매달려 살랑거린다. 이파리에 투명했던 햇빛이 투박해지며 어둑 어둑해지는 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7.14
둥지 틀기 / 윤영지 둥지 틀기 윤영지 잔 가지, 풀 조각, 흙 알갱이 젊음과 패기와 땀방울이 한데 이겨져 다부진 준비를 한다 지붕도 없이 적나라한 어둠 속에 매서운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아낼 아직은 여린 살결의 젊은 군병 홀로 서기를 일찌감치 배워 다져진 젊음, 확신에 찬 손길이 가슴 졸이는 어미의 어깨를 다독거린다 허드슨 강의 정기를 들이마시며 땀방울로 응축해간 단단한 패기를 굳게 다문 입술 위 따스한 미소로 어미에게 약속의 눈빛 지으며 오늘도 너는 길을 떠난다 네 어깨 위에 주어진 둥지를 틀기 위하여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7.11
압력 밥솥 / 황재광 압력 밥솥 황재광 너는 지금 압력 밥솥을 노려 보고있다 원폭의 버섯구름처럼 하얀 김 피우며 압력을 행사하는 그를 두려워하는가? 밥이 익어가는 동안 너는 어떤 폭정의 배후가 된다 그러나 권력의 실세는 밥이다 권력의 두껑을 연다 단단하던 쌀알들 뜨거운 눈물로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있다 눈물..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6.06
꽃사랑 / 황재광 꽃사랑 황재광 무궁화 꽃을 보면 동해물이 출렁이고 백두산이 으쓱하며 어깨를 추스르던 옛날 옛적에 사랑하는 여자 아이 하나 있었는데 성질이 무지 더러운 아이였다 그녀는 나를 본 척 만 척 내 사랑에 화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릴 적 집 앞마당 꽃밭 귀퉁이에 핀 붓꽃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6.02
빗방울의 전주 / 최덕희 빗방울의 전주 최덕희 시간은 잠들어 있다 적막함이 어깨를 누르는 오후 크레센도로 오는 빗방울의 전주 디미누엔도* 칸타빌레* 유리창을 튕기며 스타카토로 주르륵 타고 흐르며 스케르잔도* 바람결에 실려 오는 변화무쌍한 비의 하모니가 나른한 오후를 깨운다 * 디미누엔도 - 점점여리게 칸타빌레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5.31
위험한 다이어트 / 조성자 위험한 다이어트 조성자 우리들의 식탁은 별미로 가득했지 막 끓여낸 믿음 식초를 넣고 버무린 사랑 며칠 전 먹다 남은 소망 우리들의 식욕은 겁 없이 그릇을 비워냈지 과식이 용납되기도 하는 잠깐의 시절은 있어 보글보글 끓고있는 믿음의 그릇 위에 깃대를 꼽고 기치를 내 걸기도 했고 소망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5.29
언젠가 / 황재광 언젠가 황재광 언젠가 그 언젠가 하이얀 국화 무리 만발하여 너를 찾아오는 날 나는 흙으로 돌아 가야지 어둡고 촉촉한 흙이 너를 나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안아주리니 그때는 그 누구도 우리의 단잠 깨우지 않으리 오늘밤 보름 달님 인물되는 날 두발 쭉 뻗고 자자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5.28
아베 마리아/안나 모포(Anna Moffo) / 황재광 아베 마리아/안나 모포(Anna Moffo) 황재광 안나 모포 그대의 노래가 길위를 따라 걸어가네 숨을 모우고 경건하게 혹은 큰 사랑 가득 가슴에 채우고 크게 깊은 숨 들여 마시고 숲속을 통과하네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산타 마리아 그 길은 보이지 않고 아득한 길 소실점 덮어주는 희부연 안..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