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석양 / 최양숙 여름 석양 최양숙 종일토록 뜨거운 삶이 익힌 눈부신 생명의 열기 지우고 태우고 허상은 사라져 샛말갛게 남은 결정 이 저녁 붉게 익어 불씨 안은 뜨거운 재 구름을 지핀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9.08
지상명령 / 조성자 지상명령 조성자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라~는~ 남자의 바램을 몇 명의 상관 없는 여자들이 마구 뭇매를 치다가 이해가 간다는 쪽과 말도 안 된다는 쪽이 적당히 갈려 팽팽해지네 붙임성 있고 조신한 그의 여자는 돌아앉았을까 석불이 되었을까 관건은 구름의 심장을 훔쳐내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31
개개비새 둥지의 뻐꾸기 / 최양숙 개개비새 둥지의 뻐꾸기 최양숙 알을 품지 못하는 뻐꾸기 개개비새 둥지에 알을 낳고 종일 뻐꾹뻐꾹 피멍이 든다 새 둥지 찾아가는 아이 숨죽인 울음소리 밤낮 잃은 비행기가 삼킨다 공항의 팻말로 짝지워진 까만 눈 안스러워 감싸안은 개개비새 둥지에서 아이와 함께 배우는 가나다라 사물놀이 장구..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30
무료한 하루 / 윤영지 무료한 하루 윤영지 새벽녘 흩뿌리다 종일 내려앉은 하늘 뜨거운 물 한 잔에 인스탄트 커피가루 무료한 적막을 풀다 몇 모금, 텁텁해 싱크대에 쏟아붓고 아직도 늘어진 시간 옷장 속 오랜 잠 자고있는 비닐 씌워진 정장들을 깨워본다 하얀 수 놓인 곤색 투피스에, 하늘하늘 레이스 원피스, 원색 아플리..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7
행성 이야기 6 / 송 진 행성 이야기 6 송 진 한 때는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한 통속이었다지 하늘의 별은, 땅의 별들이 심한 갈증으로 모래알을 토해내자 생명수가 터졌다는 곳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안티고네*가 굶주린 새들의 먹이감으로 버려진 오라비의 시신을 땅 속에 수습하는 밤엔 더 많은 은하수를 그곳으로 흘려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5
문 밖에 누군가 서 있다 / 조성자 문 밖에 누군가 서 있다 조성자 초인종이 울리고 문고리를 돌리려는 아주 잠깐이 아득하다 누구일까 문 밖에 서서 벨을 누르는 그는 그리움의 행렬이 뒤꿈치를 끌며 사막의 낙타처럼 터벅터벅 지나가는 여름 하오의 쓸쓸함을 밟으며 나도 뒤따라갔네 태양은 빛의 파장 속으로 모든 것을 가둬두려고..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3
붉은 칸나* / 조성자 붉은 칸나* 조성자 땅으로의 긴 여행은 언제부터였는지 빙벽을 뚫고 백 년 만에 남하하고 있다는 폭설 공룡의 무리처럼 행군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막을 자는 없다는데 저 돌진은 무슨 소명을 안고 있는 걸까 이마에 닿자마자 흘러내리는 눈 전언을 등에 메고 달려와 자국도 없이 사라지는데 나는 아직..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0
기차길 옆 옥수수 밭 / 조성자 기찻길 옆 옥수수 밭 조성자 살진 피로감으로 발등 부운 사람들을 철갑상어 산란하듯 부려놓고 기차는 몸을 일으켜 간이역을 출발한다 해 지는 곳을 향해 해 뜨는 곳을 향해 하루의 격전으로 뭉개진 하늘은 귓바퀴에 수선화 노란 빛을 꼽고 마법의 등에 기댄 꿈의 음모자에게는 밀교의 주술로 무시로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0
젖은 아침 / 전애자 젖은 아침 전 애 자 바람이 돌아다니면서 끈끈이를 붙이니 나무잎들이 서로서로 부채질을 한다. 유리창에 햇빛이 번들거리자 가로등은 빛을 잃고 주인 따라 차들이 빠져나가니 파킹장은 광장이 되면서 내 가슴도 비면서 젖는다. 필요없는 살들로 찌든 생각들로 무서운 손님이 찾아와서 스스로 팔,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05
노란 화살표 / 최양숙 노란 화살표 최양숙 싼티아고 가는 길 별이 쏟아지는 들판의 작은 돌마다 빛의 비늘이 새겨놓은 노란 화살표* 돌아오지 못한 야고보의 발자욱을 다시 걷는 시간의 순례자 동행이 있어도 외로움을 걷는 길 홀로 태우는 붉은 노을길 가리비 껍질이 감싸안은 못 박힌 손바닥에 영혼을 내어걸고 길목마다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