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가족 / 윤영지 거위 가족 윤영지 아빠 거위 따라 엄마 거위, 그 뒤로 총총 걸음 아기 거위들 한적한 찻길에 오가는 몇몇 차들이 거위 가족 길 건너기를 기다린다 날마다 오던 산책길 먹이 찾아 나섰던 가족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물가의 나무 대신 들어선 커다란 포크레인 늘 있어왔던 작은 호수에 가..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6.20
Morning Glory 데이트 / 윤영지 *Morning Glory 데이트 윤영지 허리는 굽었어도 빠짐없이 맞이하는 아침 힘들여 고개 든 나팔꽃 웃음으로 앙상히 마른 손을 흔든다 빗방울도 눈송이도 멈추지 못하는 하얀 백발의 그녀 오늘은 분홍색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 하얀 모자 눌러쓰고서 하룻밤 자고 난 동네 길에 눈도장을 찍는다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6.13
아카시아 / 임의숙 아카시아 임의숙 톡 쏘는 향에 딱따구리는 먼 기억 속 퉁퉁 부어 오른 추억을 파내고 말았다 이름 없는 얼굴 하나 불러 들였다 이 핑계 삼아 두 개의 잔을 받쳐 들고 네 개의 눈을 가린 채 너의 꽃잎을 따 먹는다 어느 산 새의 부리가 부르르 떨다간 산사의 샘물로 혓바닥의 가시를 뽑고 숭..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5.18
민들레 꽃 배달부 / 윤영지 민들레 꽃 배달부 윤영지 반짝이는 검은 피부, 어깨까지 내려오는 빠글머리 촘촘히 땋아주던 엄마가 떠나간지 벌써 두 해 반 정부 보조로 간암 말기 수술 받고 투병하던 중에도 그저 멀뚱멀뚱 엄마만 쳐다보고 있었을 그 아이 열아홉의 나이에, 초등학생 체격, 유치원생의 지능 그래도 Fos..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5.10
봄동 / 전애자 봄동 전애자 스님 두 분께서 농장에서 직접 캐신 봄동을 안고 위로차 새 가게를 방문하셨다. 올 겨울은 다른 해보다 따뜻했건만 인정사정 없는 인심에 힘든 겨울이었다. 가게 주인이 자기가 쓰겠다며 가게 리스를 더 주지 않아 이십 년 동안 사다 팔고 남은 물건들을 무빙 세일할 시간도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4.10
Death Valley / 송 진 Death Valley* 송 진 삶에 관한 모든 전언은 여기서 멈춘다 생존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이 단지 한 폭의 풍경만을 이루는 곳 해수면보다 190피트가 낮은 지역이라는 표지판을 지나 길은 더 내려가서야 바닥에 닿아 다시 끝없이 달린다 녹색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잡초들 위에 잔설처럼 엉겨..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4.08
종이로 접는 봄 / 임의숙 종이로 접는 봄 임의숙 젖는다는 것은 처음을 기억하지만 돌에 스미는 물의 기복이 심한 날에는 우리 난파선을 탄다 회색의 하늘에 붉은 장미를 접으려다 목련을 걸어놓은 아침 접힌 선 하나에 줄 하나를 그으면 나비입니다 네모에서 세모로 변형된 감정은 반 쪽을 잃은 걸까요 접힌 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3.23
봄이다 / 황재광 봄이다 황재광 매서운 겨울바람 끝자락에 연두 빛 봄의 온기가 스쳐간다 긴 복도 끝 정수기에서 받아온 맑은 물 한 잔 마시고 머리를 좌우로 한번 내저어 본다 여전히 취한 느낌 봄이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3.15
위험한 겨울 / 송 진 위험한 겨울 송 진 외투도 없이 허드슨 강가에 나와 겨울을 바라본다 1월인데 얼지도 못하고 주름만 접었다 폈다하는 강물 마주 보이는 맨해튼은 한 폭의 묵화로 서서 한사코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그 완강한 품 속으로 헬리콥터 하나 비명을 지르며 파고든다 그때 우리는 안으로 안으로..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3.06
여자의 계절 / 임의숙 여자의 계절 임의숙 겨울의 각질로 돋아난 새치들 구름 샴푸를 풀어 새의 발자국을 지웁니다 입술이 닿은 흙, 살갗이 보드랍게 터져 수선화를 깨웠습니다 봄 비 내리는 날 머리를 감는 저 나무는 곧 파마를 한다는데요 당신 생각은 어떠한지요? 가지마다 달팽이 겨드랑이 마디 마디 굵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