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겨울
송 진
외투도 없이 허드슨 강가에 나와 겨울을 바라본다
1월인데 얼지도 못하고 주름만 접었다 폈다하는 강물
마주 보이는 맨해튼은 한 폭의 묵화로 서서
한사코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그 완강한 품 속으로 헬리콥터 하나
비명을 지르며 파고든다
그때 우리는 안으로 안으로만 맺히는 핏망울을
핥아주고 어루만지며 서로를 확인했었지
그리고 비겁하나마 안심하며 여러 생을 살아버렸지
마개를 딴 사이다병 위로 용솟음치는 거품
향기품은 독은 낯선 언어를 차단하며 타자를 묵살하였고
마음은 어쩐지 사금파리 위를 맨발로 걷는 죄인처럼
성 밖으로 향하는 길을 주시하다가
결국은 탈출하고 말았는데
바깥에는 해골들이 데글데글 굴러다녔지
너무 흔해서 앨러지 반응마저 무뎌지는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사진 속의 것은 이미 죽은 것
미래는 돌이킬 수없는 하이웨이의 종점
모서리가 풍화되어 삭을수록 삶에 대한 물음은 잦아들었지
입구이자 출구인 터널의 양 끝은 상통할 거라는 믿음 외에는
고미카와 준페이*의 만주벌판에는
아직도 영혼마저 삼켜버릴 눈이 퍼붓고 있을까
세포분열인지 수가 늘어난 잠자리들이
기어이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안간힘 쓰며
풍경을 흔든다
*소설 ‘인간의 조건’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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