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 임의숙 할로윈 임의숙 오! 잭오랜턴 칼자국 또렷한 삼각의 외눈, 어긋난 잇자국 통로 오렌지 끝자락 태우며 촛불은 계피 향 피리를 불고 저녁은 마녀의 주문을 외운다 깔 깔 깔 깔 초인종 초마다 분마다 꿀꺽 삼키지 안녕 안녕 귀여운 잡귀들 백설공주는 검은 머리카락이 아니었고 난장이는 없었..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31
통증의 집 / 윤지영 통증의 집 윤지영 툭,툭 집 짓는 소리 이번엔 왼쪽 뇌관이다 흐르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부둥켜안는 것들 어린아이 인중에 달라붙은 누런 콧물처럼 오랜 세월 쌓인 불순물 사이에 하나 둘 거처를 마련하고 있다 젖은 음식을 즐기고 영롱한 붉은 빛도 미련 없이 버렸다 머리를 들어 푸른 하..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28
새치 / 송 진 새치 송 진 아직도, 모두들 푸른 갑옷 방패 삼아 지난 계절 DNA 코드를 갈무리하는 은밀한 월동 준비장 철없는 몇몇 버거운 갑옷 벗어 던지고 양지쪽에서 졸고 있을 때 와! 저 단풍 좀 봐!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23
천사를 기다리며 / 임의숙 천사를 기다리며 임의숙 전염병이라지, 죽은 자와 산 자들의 모서리쯤 되는 이 계절은 불타는 나무들의 파편들이 떠 다니는 바람은 울렁이다 황달 이 들고 불티 묻은 제복을 입은 우리는 고아 아닌 고아의 발 자국을 닮아갔다 (고독 안에는 엄마 아빠가 존재하지 않아 나 도 나를 잃어 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19
새벽 보름달 / 윤영지 새벽 보름달 윤영지 어제 밤 보지 못한 보름달이 이른 새벽 회청색 하늘을 훤히 밝히고 있었어 어, 근데 왜 이렇게 반가운 걸까 그저 얼싸 끌어안고 울고 싶었지 머얼건 하늘 한 켠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갈대밭에 외쳐대는 이발사가 집게손가락 구부리고 꼬드기며 한 눈 찡긋 입..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02
나무, 그늘 시계 / 임의숙 나무, 그늘 시계 임의숙 푸른 연애의 접힌 반쪽으로 여름은 붉은 얼굴로 돌아오고 나는 여전히 당신이 독신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당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것은 은둔지로 적합한 비밀의 방, 3 시에서 4 시 사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빈 공간에는 상상이 아직 태어나지 않..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9.29
수족관 / 송 진 수족관 송 진 서걱 베일듯한 예리한 수평선을 둘러쳐 하늘과 확실한 경계를 짓고 안으로 꽉 걸어 잠근 당신의 바다 얘야, 더 들어가면 죽어! 나는 어느새 수족관으로 흘러든 한 마리 물고기 당신의 은밀한 곳을 탐색한다 제도가 찍어낸 발광체의 건조한 빛은 그나마 굴절되어 당신을 가린..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9.18
무저항의 노화(老化) / 윤영지 무저항의 노화(老化) 윤영지 시간의 조각들이 물살을 타고 흐르며 두개골 안에 견고한 벽돌이 쌓여나간다 하나 둘 타협의 여지는 자리를 잃어가고 철통같은 성벽 안에 한 때는 푸르렀던 기개와 꿈들을 담아보지만 그 오랜 동안 홀로 짊어져온 무게에 바스러져가는 중추 진액 다 내어주고..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9.18
검은 금붕어 / 임의숙 검은 금붕어 임의숙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검은 쥐들의 발자국 소리 굵은 모래 사이를 파 헤치며 남겨 놓았을 저녁의 무늬를 찾고 있어요 밥을 굶은 밤이였죠 구운 자반고등어의 비린내가 검은봉지 속에서 바삭바삭 울고 있었죠 흰눈동자를 닫지 않은 채 동그란 후라이 팬 사막을 뜨겁게..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8.06
과녁 / 송 진 과녁 송 진 정 조준하여 너를 쏜다 두 눈을 감은 채 어디를 맞아도 명중하는 절망은 천 년이 지나도 전설로 쌓이고 격발된 감정의 파편들은 침묵으로 승화되어 가슴 속 동공에 서리었다가 모멸의 순간, 일그러지는 내 모습을 고향처럼 감싸기도 그림자일 뿐이라고 반성하라고 오랜 시간..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