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사이입니다 / 임의숙 이별하는 사이입니다 임의숙 당신과 나, 잠시 이별하는 사이입니다 이 비는 12 월의 마지막 눈물 같습니다 우산 없이도 맞을 수 있는 따뜻한 비입니다 오늘 비를 맞으며 나무에 동면 반지를 감아 주었습니다 나란히 쌍 가락지를 끼었습니다 나무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 듬직..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2.08
오늘 같은 날에는 / 황재광 오늘 같은 날에는 황재광 몇달 전 고물 자동차 팔아 넘기고 요즘은 학교로 집으로 걸어 다닌다 몸무게가 4킬로 그램 빠지니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보도 위에 누워있는 은행 나무 이파리 녀석들 꾹꾹 밟고 지나는 재미 아침엔 빗방울 내리다 그치고 아스팔트는 짙은 감청색으로 젖..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1.23
가을 폭설 / 조성자 가을 폭설 조성자 시월 폭설로 한 쪽 어깨가 찢어진 아그배나무 살가죽 위로 눈 녹아 쓰리다 지나던 바람 사마리아인처럼 압박붕대로 둘둘 감기며 지혈을 하고 햇살 한 컵 받아 국화 향 진통제를 먹인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낮 꿈을 꾼 듯 뒷목을 긁적이며 부스스 일어선다 마주보..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1.21
잠이 들고 싶다 / 임의숙 잠이 들고 싶다 임의숙 나뭇잎 하늘에 띄우지 못하는 날 바람개비는 발 밑에서 맴 돈다 긴 여름 밟았던 진흙의 발가락들 굳어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 움켜쥐었던 욕심, 감촉이 둥글다 둥글게 모여 든 구름이불 속, 11월은 깃털을 단 한 장의 억새 시트 나무 뿌리에 일렁이던 달빛..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1.16
화단은 묵상 중 / 최양숙 화단은 묵상 중 최양숙 씨방이 여문 도라지 대를 뽑으려다 내년에 밝힐 보랏빛 초롱을 떠올리며 밑동을 자른다 잿빛 솜무더기마냥 풀어진 쑥부쟁이 해어진 꽃무더기도 기운을 다 잃은 터 맥없이 끌려 나온다 흙 바닥을 기는 풀넝쿨이 이파리는 푸르지만 화단을 뒤덮기 전 말려야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1.04
낙엽 추종 / 황재광 낙엽 추종 황재광 매사가 잘 안풀린다 하다못해 수퍼에서 사온 소고기를 담은 비닐 봉투 매듭조차 꽁꽁 또아리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되는 대로 살자 낙엽처럼 구멍 뚫린 배 뒤집고 길바닥에 누워 바람에 무임승차를 꿈꾸는 낙엽처럼 가는데까지 가보자 어둠 온누리에 풀린 이밤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0.27
칸다하르에서 온 전화 / 윤영지 칸다하르에서 온 전화 윤영지 일요일 오전 10시 즈음 샤워를 하다가도 귀를 곤두세우고 밖에 나갈라치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서 두근거리는 기다림으로 촉각을 세운다 매주를 기약할 수 없는 일정 어쩌다 벨이 울리면 서둘러 버튼을 누른다 찌직대는 잡음 너머로 들려오는 낯익은 ..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0.24
카르페 디엠 / 조성자 카르페 디엠* 조성자 치기로 살았던 날들은 히죽히죽 멀어져 간다 최후의 결전처럼 살아본 적 있는가? 계절의 나들목 휘어진 차선을 뚫고 나오는 마음이 밀어올린 생각 생각이 밀어내린 마음 잠시 충돌한다 그대에게 다가가는 일에 몰두했더라면 장미를 모으는 일**이 되었을까? 충돌은 여운만 남긴다..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0.19
퍼즐 한 조각 / 윤영지 퍼즐 한 조각 윤영지 사각 사각 소곤 소곤 조각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이어나간다, 땅 따먹기 한 뼘 한 뼘 지경을 넓혀나가며 제법 그럴 듯 색이 어우러지고 보암직한 형상이 그려져간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퍼즐 떼굴 떼굴 떼떼굴 굴러나오는 귀퉁이 한 조각 어스름 내리자 쏜살같이 질주하고 초승..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0.19
가을의 뒷모습 / 전 애 자 가을의 뒷모습 전애자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며 가지각색의 나뭇잎으로 거리를 곱게 모자이크를 한다. 산은 단풍들로 불이 붙어 바람난 사람처럼 몸살을 앓고 있고 초록이 바래버린 덤불에서는 작은 열매들이 햇볕을 즐기고 있는데 철새들은 높이 날아 길을 떠나니 뒤숭숭해서 마음이 심란하다. 찐 조..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