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간의 화석 층
송 진
회식 자리에 끌려 나와 그녀는 오리고기를 주문한다
잔잔한 호수의 파문이 일으키는 이 아득한 간극을
항암 치료받는 남편은 날마다 토해내고 있는 걸까
가냘픈 파장에 조각난 난파선이 입술에 부딪칠 때마다
차마 언어가 되어 건너지 못한 비듬들이
석순으로 자라, 언젠가는 표적을 향한 흉기가 되어
날을 세우게 될지도 모를 거란 미망 속을 헤매다가
밤새 소리 없이 질러댄 비명들이
착란 같은 새벽에 밀려 자지러 들고 대낮이 오면
겨우 일상으로 복귀한 활자들은
동공 밖에서 서걱거리고
한 여인과 그 아이가 뛰어든 우물에
수류탄 한 알을 까 넣었다는*
그 우물의 막막한 깊이만 헤아리다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를 바라보다가
우물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여인
벗겨진 손톱 사이로 피를 흘리며
아직도 소금기 흥건한 돌벽을 기어오르면
오리고기 한 점을 베어 문다
*최영철의 <팔월 즈음>에서
**고린도 전서 15장 20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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