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Viewing Viewing --김영일 형의 영전에서 부동자세에서 금방 벌떡 일어나 형이 반 쌍꺼풀 눈을 뜨고 좌우를 두리번거릴 것 같은데 멋진 상의를 걸치고 골프를 친 날 저녁에 적포도주를 마신 상기한 얼굴로 넓은 무도회장의 보름달 모양으로 생긴 테이블에 여럿 앉아 짭짤한 농담도 했을 법한 형이 .. 詩 2008.06.15
|詩| 詩의 속박* 속박 당하는 자유와 자유에의 구속 사이에서 당신은 갈팡질팡한다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할래 하며 윽박지르지를 말아야 해 뜨거운 속박은 즐겁다 번질거리는 아스팔트에도 떡갈나무 건조한 잎새에도 귀신 같은 요기가 돌고 있어 폭염, 때이른 폭염에 땀 흘리는 부푼 살갗, 우리는 詩의 .. 詩 2008.06.12
|詩| 안구건조증 논란 해와 달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뜰 앞 나무들과 더불어 바람을 자꾸 마시니까 몸통에 물기가 살살 증발한대 팔다리도 손톱도 대나무처럼 바삭바삭해진대 몇 백 년 전 전설의 동산 꽃뱀 기어 다니는 대나무 숲같이 눈물도 기쁨도 차츰차츰 말라 간대 그래서 당신과 나는 천수(天水)의 .. 詩 2008.06.11
|詩| 목에 면도날** 내 목은 자라 목 시방 내 목이 위태위태해 밖에 천둥번개가 난동을 치는 토요일 아침에 면도를 하는 중 터틀넥을 입고 터틀넥 한가운데 지퍼를 턱까지 치켜 올리고 머플러도 하지 않은 채 밤낮을 쏘다닐 때 내 목은 수염 하나 없이 대리석처럼 만질만질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면 목.. 詩 2008.06.01
|詩| 형식주의자에게* 사소한 겉치레보다 더 엄숙한, 말하자면 신(神)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의 본심이 마음에 들었다 호수 밑바닥만큼이나 내밀한 본심 형식에는 늘 한계가 있대요 곧잘 변덕을 부리는, 형식은 봄바람에 분분히 날리는 꽃잎처럼 속절없어요 화려하지만 덧없이 화려하겠지만 유행에 .. 詩 2008.05.30
|詩| 달에 관한 최근 소식** 천근 만근 무거운 숨을 몰아 쉬며 소리 없이 일그러지는 달 모습을 지켜봅니다 오렌지 껍데기 열렬한 광채가 저리도 멀리 떨어져서 터지는 달빛의 생리를 헤어나지 못해서 함부로 발발하는 달 사랑 소식입니다 달에게 손을 댄다 함은 달을 즉각 망가뜨리는 짓이면서 달 쪽으로 눈길을 돌.. 詩 2008.05.28
|詩| 꽃의 얼굴* 꽃 한송이가 사람 얼굴처럼 보일 수 있어 아냐 꽃 얼굴이 즉 사람 얼굴이야 꽃이 뭐길래 어떤 때는 밤새도록 꽃 생각만 나지 꽃은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저 혼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독살스러운 표정으로 앙심을 품기도 한대 꽃의 속성을 파헤쳐 봐야 아무런 소용이 .. 詩 2008.05.19
|詩| 웅장한 궁전*** 며칠 동안 토담집에 머물면서 밤이면 밤마다 당신은 웅장한 궁전을 꿈꾸시나요 흙 냄새에 등을 밀착시키고 대지의 음기를 힘껏 빨아들이나요 "Ashes to ashes, dusts to dusts." 라는 말의 깊은 뜻을 음미하시나요 가상의 궁전일 수록 화려합니다 끝장난 사랑일 수록 아름답습니다 시드는 꽃에도 .. 詩 2008.05.17
|詩| 옛날 사진 이게 내 참 모습이다 과거가 미래를 겁탈하는 이게 바로 당신이 추구하는 꽃다운 진실이야 뿌연 안개 속을 창백한 얼굴로 방황한다 차가운 강물과 숨 막히는 낭떠러지를 살살 애무하는 몰캉몰캉한 안개 속을 미래가 과거를 뭘 어쩐다구? 한 몇 천년이 쏜살같이 피융피융 확확 흘러간 다.. 詩 2008.05.12
|詩| 꽃이 터지는 소리 봄이면 우리 동네 어느 집 담장 밑에서 뻥튀기 하던 아저씨 생각이 난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꼬들꼬들한 쌀알들을 부들부들하게 만들던 요술쟁이 아저씨 뻥! 하는 순간 아이들은 혼비백산이 된다 나는 그 폭음이 좋아서 그 아저씨 옆에서 오래 서 있었다 종일토록 엉거주춤 그 옛날 .. 詩 2008.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