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앞으로 갓! 눈매 사나운 훈련담당 하사관이 앞으로 갓! 하고 난 후 몇 초도 안 돼서 뒤로 돌아 갓! 하는 통에 얼이 쑥 빠져 나팔꽃이 앞으로 가다가 얼른 뒤로 돌아간다 나도 얼이 빠진다 나팔꽃뿐만 아니라 살구꽃도 건방진 장미도 평생 한 번 본 적도 없는 야생화도 보일 듯 말듯한 북두칠성의 여섯 .. 詩 2008.09.20
|詩| 낮에 노는 강 강이 재잘대는 강물이 낮 동안 실컷 놀다가 물고기와 더불어 까불며 놀다가 밤이 되면 말도 안 하고 웃음도 그치고 이중인격자 안색으로 슬금슬금 일을 하는 거야 일이라는 게 가만이 보면 바다로 바다 쪽으로만 흘러가는 짓 훌륭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강물은 그 짓을 밤에만 한대나 봐 낙엽은 또 보라는 듯이 낮에만 떨어지잖아 밤에는 끈적한 수액을 몸 속에 똘똘 다진 다음 남은 힘으로 까칠한 가지를 끌어안고 자고 애써 자고 환한 햇살의 위로를 받아들이며 다음 날쯤 휘청휘청 떨어지고요 낙엽이 말이에요 누런 낙엽 한 잎 강물에 술렁술렁 떠내려 가네 그림 같은 낙엽 한 잎 얇은 그림자 낙엽 한 잎이 강물이 재잘재잘 떠들면서 낮 동안 실컷 노는 사이에 © 서 량 2008.09.18 詩 2008.09.18
|詩| 밤에 흐르는 강 밤에 강이 흐르는 광경이 무시무시해요 많이많이 무서워 왜 그런지 알 수 없어요 밤에 흐르는 암갈색 강물은 밝은 대낮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조잘대는 참새처럼 경쾌한 강물과는 아주 달라요 밤에 흐르는 음산한 강물은 육중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아 정말이야 한.. 詩 2008.09.17
|詩| 가을 파도 소름 돋는 여름이나 재채기 컹컹 터지는 가을 새벽에도 검푸른 바다가 파도가 거센 파도가 형체가 뵈지 않는 물기둥이 연신 울부짖는 걸 나는 외면하기로 한다 해저 깊숙이 숨어 있어 평생 한 번쯤 내 발바닥에 덜컥 밟힐 만한 희디 흰 연체동물을 소금물 흐르는 눈을 치뜨고 나는 울며불.. 詩 2008.09.16
|詩| 9월에는 그림자가 9월에는 휘영청 달빛 아래 우리들 그림자가 갈바람에 몸을 푸는 갈대인양 길쭉해집니다 9월에는 가녀린 풀꽃도 잠시 우쭐하는 단풍나무 가지도 내가 이름을 몰라도 좋은 그녀의 목도 길쭉해집니다 하릴없이 낙엽 옆자리를 더듬대는 갈바람의 손길은 아주 노골적으로 길쭉해요 9월에는 .. 詩 2008.09.10
|詩| 낙엽과 비행기 천길 만길 발 밑 지구 깊은 내부에 듬직한 막대자석이 버티고 누워 힘껏 잡아끄는 중력에 나는 쏠린다 대한항공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한밤에 촘촘한 해상도로 컴퓨터 모니터의 파도는 듬직한 막대자석과 맞붙어 치고 박고 싸운다 물결 세차게 출렁이는 지구 위에 내 어릴 적 비행기과.. 詩 2008.09.06
|詩| 코스모스의 속셈 알고 봤더니 코스모스가 조각달과 오래 전부터 내통하고 있대나 봐 코스모스는 또 허름한 초등학교 운동장 변두리에 쓰러질 듯 곧추서서 창공에 펄럭이는 만국기들과 슬쩍슬쩍 눈길을 섞다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하는 머나먼 어린이 합창단 지도교사하고 끝내 내통했다나 .. 詩 2008.09.04
|詩| 8월 말 미루나무를 위한 윤도현 식의 랩(rap) 경상도면 어떻고 충청도 전라도면 어때 당신이 좋아서 죽고 못사는 미루나무가 8월 말에 몸부림을 친다 진저리를 쳐요 진저리 진저리 진저리 쿵쿵 짝짝 짝짝 쿵쿵 이건 뽕짝이 아니야 중모리 엇중모리 에헤라 미루나무의 특기는 추임새를 넣는 거래 미루나무의 허무맹랑한 템포가 여간 .. 詩 2008.08.31
|詩| 리모콘 사랑 언제부터인지 나는 리모콘과 가까워지면서 리모콘이 가까스로 좋아졌다는 거 리모콘이 어떤 때는 내게 앙칼지게 말대꾸도 하고 땡깡도 부린다는 거 나는 리모콘을 되도록 야단치지 않고 너그럽고 교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 향기로운 진달래나 시커먼 리모콘이나 크게 다르.. 詩 2008.08.22
|詩| 기도하는 예언자** Normal 0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MicrosoftInternetExplorer4 전갈이 양 팔을 치켜 들고 항복하는 군인처럼 기어 나오네 *praying mantis, 사마귀 한 마리 꼼짝달싹 않고 땡볕을 견디네 전갈 암수 한 쌍 아까부터 손 깍지 끼고 춤추는 곁으로 새끼 전갈 수 백 마리 우글거리는 북아프리카 사막, 문제.. 詩 2008.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