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코스모스의 속셈 알고 봤더니 코스모스가 조각달과 오래 전부터 내통하고 있대나 봐 코스모스는 또 허름한 초등학교 운동장 변두리에 쓰러질 듯 곧추서서 창공에 펄럭이는 만국기들과 슬쩍슬쩍 눈길을 섞다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하는 머나먼 어린이 합창단 지도교사하고 끝내 내통했다나 .. 詩 2008.09.04
|詩| 8월 말 미루나무를 위한 윤도현 식의 랩(rap) 경상도면 어떻고 충청도 전라도면 어때 당신이 좋아서 죽고 못사는 미루나무가 8월 말에 몸부림을 친다 진저리를 쳐요 진저리 진저리 진저리 쿵쿵 짝짝 짝짝 쿵쿵 이건 뽕짝이 아니야 중모리 엇중모리 에헤라 미루나무의 특기는 추임새를 넣는 거래 미루나무의 허무맹랑한 템포가 여간 .. 詩 2008.08.31
|詩| 리모콘 사랑 언제부터인지 나는 리모콘과 가까워지면서 리모콘이 가까스로 좋아졌다는 거 리모콘이 어떤 때는 내게 앙칼지게 말대꾸도 하고 땡깡도 부린다는 거 나는 리모콘을 되도록 야단치지 않고 너그럽고 교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 향기로운 진달래나 시커먼 리모콘이나 크게 다르.. 詩 2008.08.22
|詩| 기도하는 예언자** Normal 0 0 2 false false false EN-US KO X-NONE MicrosoftInternetExplorer4 전갈이 양 팔을 치켜 들고 항복하는 군인처럼 기어 나오네 *praying mantis, 사마귀 한 마리 꼼짝달싹 않고 땡볕을 견디네 전갈 암수 한 쌍 아까부터 손 깍지 끼고 춤추는 곁으로 새끼 전갈 수 백 마리 우글거리는 북아프리카 사막, 문제.. 詩 2008.08.13
|詩| 옛날 집 비 줄줄 내리는 새벽 엎치락뒤치락하는 꿈길에 어렴풋하게 자리 잡은 나 살던 옛날 집이 분명 지금 내가 사는 집이랑 똑 같다고 우긴다면 당신이 믿을 수 있겠니 한여름 따갑고 가려운 땀띠가 얼굴에 그득한 옛날 집 대문 바로 옆에 묵묵히 서 있는 밤이면 촛불을 켜들고 가던 거울도 없는 추운 화장실의 아늑한 공간을 당신도 그리워할 수 있겠니 흔들거리던 충청남도 대전시 대흥동 시절 판자로 엮은 담일랑 지금쯤 그림자조차 없어졌을 거라는 시시한 생각을 했어 그 생각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몰랐어 전혀 나 살던 옛날 집 대문 옆 화장실이 그 집 뒷곁 굴뚝만큼이나 내 뒤퉁수 골수에 깊이깊이 박혀 있는 줄이야 © 서 량 2008.08.11 詩 2008.08.11
|詩| 안전수칙 Gioachino Rossini (1792 -1868) 운세의 흔들림으로 우왕좌왕하는 우주의 기동력에 몸을 맡기세요 편안한 회전속도야말로 의지의 지배를 받는대요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거야 신성(神性)이 아니야 유전인자라니까 콩 심은 언덕과 팥 심은 들판을 잘 분별하려는 대지(大地)의 의향이래 아침 6시 반 바람 속 .. 詩 2008.08.05
|詩| 인형들의 합창 당신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어른 모습 인형들이 건물 입구에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서 있다. 더러는 중절모자를 쓰거나 트렌치 코트를 입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이들은 대개 도시계획 모형도의 일부분이다. 가로수 잎사귀들 몰래 흔들리는 바람결에 얼굴이 갸름한 여자의 마후라도 함.. 詩 2008.07.31
|詩| 암탉의 경악 달걀 없이 살지 못한다 달걀은 신선한 아침 쉐이빙 로션만큼 필수적인 걸 주말 점심 시간 가까이 뚱뚱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다이너에 가봐요 달걀이 필수지 내가 당신에게 필수적 존재이듯 뒷마당 풀밭 클로버가 팔팔한 흙색 야생토끼의 필수이듯 동네 다이너에서 에그프라이를 삼지창.. 詩 2008.07.29
|詩| 보이지 않는 달* 당신 몸놀림이 동영상으로 찍혀서 도마뱀 몇 마리 숨어 있는 숲 속 한 구석에 역사의 증거물로 남는다는 건 좀 무서운 이야기다 대보름 달밤에 마귀할멈이 오누이를 가마솥에 집어넣고 삶아먹으려 하는 동화처럼 갓난아기 옹알이를 무서워하지 말 것 알맞은 조명에 화려한 화장을 하고 .. 詩 2008.07.21
|詩| 몰래 하는 말* 숨바꼭질할 때처럼 몸을 바짝 숨기고 머리칼마저 감추는 재미가 그렇게 짜릿하대요 보이고 싶은 것을 가리는 미덕이 보통 미덕이 아니래요 어른이 되면 될 수록 예술의 가면을 쓰시기를 예쁜 옷으로 알몸을 가리고 까만 안경을 쓰고 서로서로 진실을 묵살하는 재미가 보통 재미가 아니.. 詩 2008.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