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목에 면도날**

서 량 2008. 6. 1. 15:39

 

내 목은 자라 목
시방 내 목이 위태위태해

밖에 천둥번개가 난동을 치는
토요일 아침에 면도를 하는 중

 

터틀넥을 입고 터틀넥 한가운데 지퍼를 턱까지 치켜 올리고 머플러도 하지 않은 채 밤낮을 쏘다닐 때 내 목은 수염 하나 없이 대리석처럼 만질만질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면 목 안에 용암처럼 뜨거운 가래가 끓어올랐다 곰팡이 냄새 푸짐한 지하실 다방에서 아리랑 담배를 태우던 그 겨울 담배 연기가 나는 참 좋았다

 

면도기 속에서 AA 배터리가 부르릉 전율한다 내 목젖도 부르르 진동하고 자라 목도 개울물 속에서 부들부들 방황한다 그 옛날 머리 하나 뜨겁게 나빴던 수유리 우리집 삽살개 입가에 막무가내로 뻗치던 수염처럼 그렇게 내 수염이 길다는 생각일랑 당신은 하지 말기를 수염을 뿌리째 도려내려고 목에 칼을 댄다 떨리는 손으로 후회도 미련도 없이 우락부락한 바깥 하늘을 힐끗힐끗 곁눈질 하면서


©서 량 200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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