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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달과 나**

달과 내가 아무도 없는 밤하늘에서 정을 통하는 게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 일이냐 저 눈매 깔끔한 달 여인이 워낙 벙어리라서, 벙어리라서 나도 덩달아 순 벙어리로 춤을 춘다 꾸불꾸불한 팔다리를 더욱 더 꾸불텅꾸불텅하게 내 어릴 적 밝은 밤 앞마당 도리깨처럼 깡마른 키가 추녀 끝에 닿도록 하늘로 쿵쿵 뛰어오르는 낯 익은 그림자 하나 달밤에 우는 사람 마음은 달밤에 울어 봤던 사람만 안다 © 서 량 2008.09.28

2008.09.29

|詩| 낮에 노는 강

강이 재잘대는 강물이 낮 동안 실컷 놀다가 물고기와 더불어 까불며 놀다가 밤이 되면 말도 안 하고 웃음도 그치고 이중인격자 안색으로 슬금슬금 일을 하는 거야 일이라는 게 가만이 보면 바다로 바다 쪽으로만 흘러가는 짓 훌륭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강물은 그 짓을 밤에만 한대나 봐 낙엽은 또 보라는 듯이 낮에만 떨어지잖아 밤에는 끈적한 수액을 몸 속에 똘똘 다진 다음 남은 힘으로 까칠한 가지를 끌어안고 자고 애써 자고 환한 햇살의 위로를 받아들이며 다음 날쯤 휘청휘청 떨어지고요 낙엽이 말이에요 누런 낙엽 한 잎 강물에 술렁술렁 떠내려 가네 그림 같은 낙엽 한 잎 얇은 그림자 낙엽 한 잎이 강물이 재잘재잘 떠들면서 낮 동안 실컷 노는 사이에 © 서 량 2008.09.18

2008.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