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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42. 웃기는 짬뽕

한국 티비에서 자꾸 '멘트(ment)'라는 말을 듣는다. '진술'이라는 의미의 'statement'의 끝부분을 덜렁 떼어온 토막영어다. 인사말을 '오프닝멘트'라 하고 맺음말을 '엔딩멘트'라 한다.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다. 술을 '쭉 마셔라' 하는 우리의 '원샷!(One shot!)'은 '주사 한방'이라는 뜻. 멀쩡한 사람에게 싸움을 부추기는 일본식 영어 '화이팅!(Fighting!)'도 영어가 아니다. 양키들의 'cell phone'을 우리는 '핸드폰'이라 한다. '손전화'라니? 발로 거는 전화도 있는가. 우리는 영어를 가래떡처럼 석둑석둑 잘라서 쓴다. '리플'은 'reply'에서 끝부분을 떼어먹은 것. 컴퓨터를 '컴'이라 하고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에서 글자 넷을 죽인 말. '니고시에이션(n..

|컬럼| 41. 칠면조 유감

칠면조 유감 칠면조(七面鳥)! 하면 어딘지 이국적이고 로맨틱하게 귀에 들어온다. 새는 새인데 일곱 개의 면이 있다니. 프리즘 렌즈가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빛의 조화가 눈에 선하게 떠 오르지 않는가. 1541년과 1555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뉴기니(New Guinea)에 서식하던 야생조(野生鳥) ‘turkey’를 폴투갈 사람들이 미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아세아의 실크로드(silk road)가 유명해졌듯이 그들이 터키를 몰고 가던 땅이름이 나중에 터키라는 국가 이름으로 변했다 한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봐요. 어찌하다 나라 이름이 날짐승 이름이 됐는가. 우리나라 이름이 ‘꿩’이나 ‘닭’이라는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월드컵 축구경기 응원할 때 저 귀에 익은 ‘대~한민국’ 대신에 ‘꿩~민국’ 혹은 ‘닭~민국..

|컬럼| 40. 독특한 어감의 배~드

독특한 어감의 배~드 'bad'는 'good'의 반대말로 13세기에 생겼다 한다. 그 이전의 미국인들은 현대어의 ‘bad’라는 개념이 없이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good'의 반대말로 사악하다는 의미의 'evil'과 병(病)들었다는 뜻의 'ill'이 있었을 뿐. 'good and evil (선과 악)'은 아직도 널리 쓰이는 숙어다.  'good and bad(좋고 나쁨)'에 대하여 생각해 볼지어다.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법정에라도 가서 시비곡절을 가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가. 고대의 ‘good’은 종교적인 개념에서 왔고 현대의 'good'은 준법정신을 불러일으킨다. 'bad'는 'baddel'에서 파생됐다. 'baddel'은 남녀의 생식기를 동시에 겸비한 자웅동체의 기형인간을 뜻했다. 의학용..

|컬럼| 39. 개가 있는 풍경

개가 있는 풍경 ‘저 먹기는 싫고 개 주기도 아깝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자신은 큰 관심도 없는 일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눈 뜨고 못 보는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낸 말이다.  영어에도 그런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이솝 우화 중에서 한 개가 저 자신이 여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약이 올라 여물통 속에 들어가 난동을 부림으로써 다른 동물들이 여물을 못 먹게 했다는 이야기.  ‘a dog in the manger (여물통 속의 개)’라는 관용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는데 소위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린다’는 놀부심사다. 자고로 개는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인간의 고약한 심성을 비유하는데 있어서 좋은 샘플이 된다. 미우나 고우나 개는 우리의 공격성을 대변한다. ‘개처럼 일해서 정승처럼 살아라’ 할 때의 개는 아주 ..

|컬럼| 38. 행복하라는 말

행복하라는 말 요사이 우리는 인터넷에서 상대와 서로 인사를 차릴 때 ‘행복하세요’ 혹은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한다. 얼핏 듣기에 대단한 축복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별로 행복한 기분이 아닐 때는 그 말을 들으면서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하라는 축원은 일종의 압력일 뿐더러 때에 따라서는 모욕이다. 가난해서 쩔쩔매는 사람에게 가볍고 유쾌한 언성으로 ‘부자가 되세요’ 해 보라. 기분이 어떻겠는가. 덕담(德談)은 일년에 한 번 정도, 이를테면 음력 설날 어른신이 ‘새해에 복 많이 받아라’ 하시는 것으로 족하다. 매일 덕담을 듣는 것은 고역이다. 누가 내게 월요일에도 ‘행복하세요’ 화요일, 수요일에도 ‘행복하세요’ 한다면 나도 사람이거늘 어찌 ..

|컬럼| 37. 여의주(如意珠)의 비밀

여의주(如意珠)의 비밀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디워(Draggon Wars)가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엊그제 뉴욕 북부 동네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봤다. 이무기가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물고 용이 되어 승천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의주는 실눈을 지긋이 뜬 부처가 엄지와 검지로 그리는 구슬 모양이다. 소위 동양의 사상을 대표하는 곡선의 상징이다. 양키들 건축이 하나같이 직사각형임에 반하여 우리의 경복궁과 창덕궁의 추녀가 그리는 부드러운 선을 보라. 그토록 우리의 사고방식은 둥글고 원활하다.   여의주는 요술을 부린다. 이무기가 여의주를 제 것으로 만드는 순간 용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매직(magic)이다.  ‘magic (마술: 魔術)은 14세기 말 희랍어로 ‘예술’ 혹은..

|컬럼| 36. 밑에 서기, 함께 서기

밑에 서기, 함께 서기 ‘stand’는 ‘서다’는 뜻으로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는 기립동작을 뜻한다. 반면에 ‘서다’는 움직이다가 멈춰서는 동작정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의미는 우리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서 있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 보세요!(Don’t just stand there, do something!)’ 할 때 ‘stand’는 가만이 서있는 부동자세를 지적하는 말. 양키건 한국 사람이건 일어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냥 서 있기만 한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다. 장땡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화투놀이에서 ‘섰다’를 할 때 선다는 것은 상대에게 응수하고 도전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선다는 것은 생명현상의 발로이면서 인간을 두발로 서게 한 동물 진화단계의 최첨단 동작이었다. 사내들끼리 하는 말로 ..

|컬럼| 35. 요한복음과 고양이

요한복음과 고양이 '아무개'라는 뜻의 우리말 '홍길동'을 영어로는 'John Doe'라 한다. 'John'은 서구에서 아주 빈번하게 쓰이는 남자 이름으로 이 가상적인 성명은 18세기 중엽에 영국법정에서 토지 소유권에 대한 모의재판을 했을 때 처음 쓰였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부르는데 쓰이기 시작했단다. 1911년부터 후커(hooker)들이 만들어낸 슬랭으로 'John'은 그들의 고객을 뜻하면서 자기들 비지니스를 알선하고 보호해 주는 핌프(pimp)를 지칭했다. 핌프는 우리 슬랭으로 뚜쟁이 또는 기둥서방이라는 의미. 그리고 1930년 경부터 소문자로 시작하는 'john'은 남자화장실이라는 뜻이 됐다. 미 동북부 사람들, 넓게는 모든 미국사람을 양키라 부르기도 ..

|컬럼| 34. 피랍자를 돌려주는 용(龍)

피랍자를 돌려주는 용(龍) 용궁은 용이 사는 궁이다. 효녀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든 후 용궁에서 푸짐한 대접을 받으면서 하루를 잘 지낸 후 용왕의 신통력으로 연꽃 속에 들어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곳 용궁에는 금은보화가 그득하고 음식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고 전해진다. 원래 우리의 파라다이스는 바다 밑에 있었다. 구약에서 파라다이스는 에덴 동산이었고 신약시대의 천국은 하늘에 위치한다. 인류의 낙원은 해저에서 점점 하늘쪽으로 풍선처럼 둥실둥실 날아가는 변천사를 겪는다.  'dragon'은 13세기 초 불어와 라틴어의 'draco'에서 유래했는데 '뱀'을 뜻했다. 아담과 이브를 살살 유혹한 바로 그 교활한 뱀이었다. 같은 어원의 'drak'는 희랍어로 '똑똑히 보다' 혹은 '무섭게 노려보다'라는 뜻. ..

|컬럼| 33. 필(feel)이 꽂히다

필(feel)이 꽂히다 근래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우리말 슬랭, '필(feel)이 꽂히다'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이 이상한 구어(口語)는 영어와 우리말의 조합으로 태어난 혼혈아적인 표현이다. 세상이 급한 세상이라 때로는 아예 '필 꽂히다'라며 조사를 빼기도 하고 강조를 할 때는 '필이 팍팍 꽂힌다'며 힘주어 말하면서 언어생활의 최첨단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어떤 '느낌'이 들었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대신에 꼭 그렇게 'f'와 'p'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어발음을 재래식 한국말과 교배시키는 우리의 정서가 놀랍고 새롭다. 무엇이 꽂히다니! 얼마나 아플까.  이것은 가령 전신을 새까만 천으로 휘감은 닌자(Ninja)가 어느 날 밤 지붕에서 뒷마당으로 사뿐 뛰어내려 표창이라도 휙! 휙! 던지는 발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