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0. 독특한 어감의 배~드

서 량 2008. 3. 21. 04:37

독특한 어감의 배~드

 

'bad'는 'good'의 반대말로 13세기에 생겼다 한다. 그 이전의 미국인들은 현대어의 ‘bad’라는 개념이 없이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good'의 반대말로 사악하다는 의미의 'evil'과 병(病)들었다는 뜻의 'ill'이 있었을 뿐. 'good and evil (선과 악)'은 아직도 널리 쓰이는 숙어다.

 

'good and bad (좋고 나쁨)'에 대하여 생각해 볼지어다.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법정에라도 가서 시비곡절을 가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가. 고대의 ‘good’은 종교적인 개념에서 왔고 현대의 'good'은 준법정신을 불러일으킨다.

 

 'bad'는 'baddel'에서 파생됐다. 'baddel'은 남녀의 생식기를 동시에 겸비한 자웅동체의 기형인간을 뜻했다. 의학용어로 'hermaphrodite'라 하고 우리말로 '남녀추니' 또는 '어지자지'라 한다. 중세기에 'baddel'이 'badde'로 변했다가 나중에 'bad'로 변천 된 것이다. 알고 보면 'bad'의 뿌리는 신체의 기형을 뜻했다. 비정상이란 그렇게 나쁜 것이었다. 

 

20세기 초반에 ‘bad’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즉흥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재즈음악가들 사이에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기존음악의 한계를 깨트리는 연주가들을 칭찬하는 말로 'He is bad!' 하는 유행어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는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무섭게 잘 할 때 감탄사처럼 'Bad!'라 하는 말 습관이 흑인들 사이에 산불처럼 퍼져 나갔다. 백인들도 이 속어를 빈번하게 쓴다. 우리말로도 이것을 '기똥차다' '끝내주다' '죽여주다' 라고 옮기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bad'를 좋다는 뜻으로 말 할 때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즉, 그 발음을 다르게 해야 하는 법. 그냥 깍듯이 '배드'라 하면 나쁘다는 뜻인데 기가 막히게 좋다는 뜻으로 쓰고 싶으면 '비애~드' 하고 힘주어 약간 길게 흑인 발음으로 내뱉어야 뉘앙스가 제대로 먹혀 들어간다. 표준 영어에는 'bad'의 비교급과 최상급이 'worse'와 'worst'지만 좋다는 뜻으로는 비교급과 최상급을 'badder'와 'baddest'라 해야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흥이 난다. 'He is the baddest dude on the block' – '그놈은 동네에서 제일 끝내주는 놈이야' 
 
'어지자지'라는 뜻으로 'baddel'이 생겨난 후 근 800년이 지난 금세기에 수 년 전부터 항간에 'bad hair day'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머리가 헝클어지는 날, 하는 일이 잘 안 되는 날, 더 의역해서 '폼 상하는' 날을 뜻한다. 바람 부는 날이다. 하는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풀리지 않을 때 'I am having a bad hair day'라고 말해 보라. 미국인 동료나 상사가 씩 웃으면서 동정 어린 시선을 던질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1987년 히트 곡 'Bad'도 좋은 뜻이었다. 그토록 나쁘다는 의미는 좋게 해석되기 일수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 여자가 '나뻐, 나뻐' 하며 남자의 넓은 가슴을 때리다가 폭삭 안길 때도 사실은 좋다는 의미다.

 

남을 욕한다는 뜻으로 1940년대부터 쓰이는 'badmouth'는 또 어떤가. 'bad'가 들어가는 말도 이쯤 되면 오히려 속이 시원해진다. 입때껏 이 단어를 스스럼 없이 썼을 때 불쾌하게 받아드리는 미국인을 본 적이 없다. 요사이 새로 생긴 우리 유행어로 평소에 까칠하게 노는 미국인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한 번 말해 보라. 'I heard you badmouthed me! (당신이 내 욕을 했다고 들었는데!)' - 아마도 그 밉살스러운 미국인은 히죽 웃을 것이다.


© 서 량 2007.10.30
뉴욕중앙일보 2007년 10월 30일에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