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4. 피랍자를 돌려주는 용(龍)

서 량 2007. 12. 27. 07:38

  용궁은 용이 사는 궁이다. 효녀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든 후 용궁에서 푸짐한 대접을 받으면서 하루를 잘 지낸 후 용왕의 신통력으로 연꽃 속에 들어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곳 용궁에는 금은보화가 그득하고 음식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고 전해진다.

 

 원래 우리의 파라다이스는 바다 밑에 있었다. 구약에서 파라다이스는 에덴 동산이었고 신약시대의 천국은 하늘에 위치한다. 인류의 낙원은 해저에서 점점 하늘쪽으로 풍선처럼 둥실둥실 날아가는 변천사를 겪는다.

    

 'dragon'은 13세기 초 불어와 라틴어의 'draco'에서 유래했는데 '뱀'을 뜻했다. 아담과 이브를 살살 유혹한 바로 그 교활한 뱀이었다. 같은 어원의 'drak'는 희랍어로 '똑똑히 보다' 혹은 '무섭게 노려보다'라는 뜻. 잠자리를 'dragonfly'라 하는 이유도 눈이 유난히 크고 무섭게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경동맥에 송곳니를 박는 흡혈귀 드라큘라(Dracula) 백작이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본다면 당신이나 나나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 붙을 것이다. 그 드라큘라도 상기한 'draco'와 아주 비슷한 발음인 것을 당신은 이미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의술의 원조인 히포크라테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도 뱀으로 장식 돼 있다. '용한 의사' 할 때도 그 어원이 여의주(如意珠)를 가진 용처럼 의사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뜻인 '용(龍)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앞으로 당신은 부디 유심히 관찰해 볼지어다. 한의사나 양의사를 막론하고 용한 의사들은 눈빛이 강렬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을.

 

 우리의 용은 또 왕(王)을 상징했다.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왕의 수염을 용수(龍鬚), 왕의 옷을 용포(龍袍)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용두(龍頭)질'은 어느 순간 용의 머리처럼 보이는 해부학적 소견에 착안점을 둔 사내들의 특정행위를 이르고 '용수철'은 용의 수염처럼 탄력이 있는 쇠를 뜻한다. 과연 왕들의 수염은 볼펜 속 용수철처럼 그렇게 꼬불꼬불했을까. 진화론적 견지에서 보면 용이나 뱀의 전신이 물고기였으니 우리 역대의 임금님들은 모조리 물고기 출신이었다는 말인가.

 

 양키들은 그저 눈 앞에 용만 얼씬하면 용의 목을 칼로 베었다. 유럽의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중세기 경부터 그렇게 용 죽이기에 전심했던 것이다. 사실 용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북해를 주름잡던 바이킹의 뱃머리도 용으로 장식돼 있다. 공포의 대상은 꼭 목을 베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이었다. 서구는 늘 그렇게 살부(殺父) 문명의 점철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용은 늘 우리를 용궁으로 초대해서 은덕을 베푸는 친근한 존재였다. 우리가 만약 용의 목에 양키들처럼 칼을 댄다는 것은 그 상상 하나 만으로 시쳇말로 큰 ‘괘씸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300년경 전 신라 성덕왕 시대에 강릉태수 순정공(純貞公)이 와이프 수로부인(水路婦人)과 함께 강릉으로 부임해 가던 도중, 동해의 용이 날생선처럼 섹시한 천하절색의 수로를 납치해 간 일이 있었다. 이윽고 순전공은 어느 용한 도사의 충고를 따라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치며 '해가(海歌)'를 불렀더니 용이 수로부인을 얼른 돌려줬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한다. 그때 그 노래는 다음과 같이 동해바다에 울려 퍼졌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 훔친 죄가 그 얼마나 큰가 / 만약에 어기고 내놓지 않는다면 / 너를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거북이는 우리 설화에 용의 아들로 자주 그려진다. 그처럼 신출귀몰한 용도 자기 아들을 구워 먹겠다는 언론의 협박에는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피랍자를 순순히 돌려 줄줄 아는 우리 고전(古典)의 용이 시사하는 애타주의가 몹시 아쉽고 그리워지는 요즘 세태다.

 

 

© 서 량 2007.08.05
-- 뉴욕중앙일보 2007년 8월 8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