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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23. 청록색맹을 의심하다

청록색맹을 의심하다 춘분이 가까이 오면서 겨울나무 잔가지에 푸릇푸릇한 색깔이 스며든다. 봄이면 우리를 찾아오는 빛은 단연코 녹색이다. 춘색(春色)이 완연한 요즈음 청색과 녹색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통적으로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는 '청산(靑山)'이라는 어휘가 참 신비롭고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산을 멀리서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산을 가까이 다가가 보는 순간 산은 녹색이다. 나무와 숲이 엄연히 녹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왜 산을 녹산(綠山)이라도 하지 않았는가. 젊은 남녀를 녹춘(綠春)이라 하지 않고 왜 청춘(靑春)이라 했는가. 오죽하면 한때 우리 조상들이 하나같이 청색과 녹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색맹들이었다는 ..

[뉴욕 25시] 두 black widow가 말해 주는 것 - 김현일 중앙일보 주간

https://news.koreadaily.com/2007/02/07/society/opinion/453371.html 독자들의 선호하는 본지 칼럼 중의 하나가 '잠망경'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시인인 서량 박사가 '잠망경'의 고정 필자임을 모르는 뉴요커는..." data-og-host="news.koreadaily.com" data-og-source-url="https://news.koreadaily.com/2007/02/07/society/opinion/453371.html" data-og-url="https://news.koreadaily.com/2007/02/07/society/opinion/453371.html" data-og-image="https://scrap.kakaocdn.net/dn/Gr..

|컬럼| 22. 까만 안경

까만 안경 까마득한 옛날에 원시인들은 동굴에서 살면서 밤을 무서워했다. 깜깜한 밤이면 육식동물들이 굴에 들어와 그들을 물어뜯거나 잡아먹기도 했으리라. 눈부신 한낮에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던 원시인들은 어둠이 마냥 싫었다. 그래서 그들은 검정색을 꺼려했다. ‘black’은 나쁜 뜻 투성이다. black sheep (말썽꾸러기), blackout (필름이 끊긴 상태), blackmail (협박), black market (암시장), black eye (맞아서 꺼먼 눈 자위) 따위가 좋은 예다.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도 ‘Black Death’라 했다. ‘black widow (검정 과부?)’는 암거미가 성교가 한 후 수거미를 잡아 먹은 후 즉석에서 ‘과부’가 되는 무시무시한 흑거미의 자태..

|컬럼| 21. 원효(元曉)의 입맛

원효(元曉)의 입맛 ‘sugar’는 기원전 300여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쳐들어 갔을 때 병정들이 ‘벌이 없이 만든 꿀 (honey without bees)’이라 불렀던 산스크릿어(범어)의 ‘sharkara’에서 유래된 단어다. 이태리의 말코 폴로가 국수를 중국에서 가져갔듯이 유럽인들은 설탕을 인도에서 가져간 것이다. 인간이 감지하는 다섯 가지의 기본 맛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맛은 물론 단맛. 비근한 예로 ‘honeymoon’, 꿀 밀자에 달 월자를 붙여 쓴 ‘밀월(蜜月)’여행이 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즉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교훈이 담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격언도 단맛에 역점을 둔다. 1350년경부터 쓰기 시작한 ..

|컬럼| 20. 맞아야 하나 때려야 하나

맞아야 하나 때려야 하나 상대방의 말에 동의할 때 양키들은 약속이나 한 듯 ‘Right!’라고 외친다. 누구도 ‘Left!’ 하지 않는다. 올바른 길은 늘 오른쪽 길이라는 언어습관이 흥미롭지 않은가. 정치용어로 우익, 좌익 하는 것도 오른쪽 왼쪽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왼손보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더 이롭다는 학설이 있다. 심장이 가슴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위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 오른손을 사용함으로써 심장을 외적(外敵)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있게 한다는 이론이다. 왼손잡이가 왼손을 휘두르며 하는 칼싸움은 자기 심장이 상대방의 칼끝에 가까운 만큼 위험부담이 클 것이다. 어릴 적에 왼손으로 숟갈질을 하다가 할머니에게 야단맞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상대의 말에 동의할 때 ‘맞습니다!’..

|컬럼| 19.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영어 슬랭에 고양이가 자주 나온다. 우리말 속어에는 ‘여우'가 더러 등장하지만 고양이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대충 물만 찍어 바르는 세수를 ‘고양이 세수'라고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라는 뜻으로 ‘There's more than one way to skin a cat (고양이 껍질을 벗기는 방법이 하나 둘이 아니다.)’라는 속어가 있다. 양키들이 예상 외로 시치미를 뚝 따고 쓰는 표현인데 그 때마다 말하는 사람의 안색을 잘 살펴보면 고양이의 야들야들한 살갗을 벗기는 따위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양이가 들어가는 영어 속담을 조사해 보자.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컬럼| 18. 주인과 손님

호텔(hotel), 병원(hospital), 주인(host), 적개심(hostility), 또는 볼모(인질: hostage)의 말 뿌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hospital'에서 파생된 'hospitality'는 '융숭한 대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경건한 말 속에 '적개심'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말인가. 고대 라틴어 'host'는 '다수'와 '적'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소수에게 다수는 항상 적이었다. 'host'는 낯선 사람 외국인을 뜻하는 'hostis'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저절로 짧아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다수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외국인도 적으로 취급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어른들의 잠재의식을 대변하는 어린애들 말에도 내편은 '우리 ..

|컬럼| 17. 붙고 떨어지기

붙고 떨어지기 ‘붙다’는 국어사전에 1.서로 마주 닿다 2.의지하다 3.불이 옮아 타기 시작하다 4.밀접히 교제하다 5.(속어)암수가 서로 교미하다, 등등으로 나와 있다. ‘붙다’는 자동사고 ‘붙이다’는 타동사다. 같은 뜻으로는 영어에 'stick’이 있다. 이를테면 1912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슬랭 표현 ‘Stick around!’는 어디 가지 말고 그 자리에 ‘붙어 있으라’는 뜻이다. ‘stick together’는 서로 의지하고 돕는다는 의미다. 이 관용어는 위에 열거한 뜻 중에서 5번이 암시하는 성적(性的)인 뉘앙스가 전혀 없는 말이다. 이렇게 영어와 우리말은 뉘앙스가 엄청나게 다를 때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제법 미남으로 생긴 당신이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한국여자를 찾아가서 ‘우리 붙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