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2. 웃기는 짬뽕

서 량 2008. 4. 2. 05:07

한국 티비에서 자꾸 '멘트(ment)'라는 말을 듣는다. '진술'이라는 의미의 'statement'의 끝부분을 덜렁 떼어온 토막영어다. 인사말을 '오프닝멘트'라 하고 맺음말을 '엔딩멘트'라 한다.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다.

 

술을 '쭉 마셔라' 하는 우리의 '원샷!(One shot!)'은 '주사 한방'이라는 뜻. 멀쩡한 사람에게 싸움을 부추기는 일본식 영어 '화이팅!(Fighting!)'도 영어가 아니다. 양키들의 'cell phone'을 우리는 '핸드폰'이라 한다. '손전화'라니? 발로 거는 전화도 있는가.

 

우리는 영어를 가래떡처럼 석둑석둑 잘라서 쓴다. '리플'은 'reply'에서 끝부분을 떼어먹은 것. 컴퓨터를 '컴'이라 하고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에서 글자 넷을 죽인 말. '니고시에이션(negotiation)'을 '네고'라 하고, '플래시라이트(flashlight)'도 절반을 뚝 잘라서 '플래시'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와~' 하는 감탄사가 순수한 우리말이었다. 그러나 요새는 모두 '와우~(Wow~)'라며 영어로 소리친다. 그리고 '어머나' 혹은 '하나님 맙소사' 대신에 멀쩡한 한국인들이 티비에서 '오 마이 갓' 하는 것은 또 무슨 변고인고? 이런 식으로 가면 머지않아 '아차!' 하는 대신에 '읍스!(Oops!)' 하고 '이걸 어쩌나!' 하는 대신에 '어, 오우!(Uh, oh!)' 할 것임이 틀림 없다. 당신 나하고 베팅(betting) 할래?

 

양키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스킨십(skinship)이라는 말이 있는데 'skin'과 'relationship(관계)'의 어미인 'ship'을 붙여서 일본인들이 만든 조어(造語)다. 당신이 직접 인터넷 검색을 해 보라. 1971년에 일본에서 나온 영어사전에 처음 등록된 단어라고 나와있지 않은가. 일본말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우리들은 이렇게 일본영어는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

 

'짬뽕'도 일본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나가사키에서 사해루(四海樓)라는 음식점을 하던 중국인 진평순(陳平順)에 의해서 1899년 경에 처음 만들어진 요리 이름이 짬뽕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일본영어와 일본말을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산다.

 

'웃기는 짬뽕' 혹은 '웃기는 짜장면'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아내려고 인터넷을 한참 쏘다녔다. 20여년 전쯤에 어떤 '개그맨'(역시 이 말도 콩글리시!)이 만들어낸 말이라는 소문도 있고 일설에 의하면 남들이 다 자장면을 먹는데 혼자만 짬뽕을 먹는 놈이 웃기는 놈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웃긴다 해서 생긴 표현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짬뽕'에는 또 이것 저것을 섞는다는 뜻도 있다.

 

짬뽕영어를 수집해 보았다. 소개팅(소개를 시켜주는 meeting); 휴대폰; 팀장(team長) 등이 있다. 티비 연속 드라마에 나오는 장래가 유망한 청년들이 회사에서 시장개발을 연구할 때는 하나같이 '마케팅을 위한 컨텐츠(contents) 개발'이라 한다. '오바(over)하다' 또는 '필(feel)이 꽂히다' 같은 영어와 우리말의 짬뽕표현은 이제 거의 표준어처럼 빈번하게 쓰인다.

 
왜 당신은 '내가 너무했나?' 하지 않고 '내가 오바했나?' 하면서 폼을 잡는가. '건강식' 이라 하지 않고 '웰빙음식'라 하면 왜 당신은 귀가 솔깃해 지는가.

 

우리는 짬뽕언어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순수한 우리말보다 짬뽕표현을 선호하는 우리들이다. 이 풍조야말로 워싱턴의 조화유가 지적한 '언어적 사대주의'가 아닌가 말이다. 반일감정과 반미감정을 내세우고 들먹이는 우리의 붉은 악마 출신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어찌 그리 겉 다르고 속 다른 심리상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가.


© 서 량 2007.11.26
--뉴욕중앙일보 2007년 11월 2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