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풍경
‘저 먹기는 싫고 개 주기도 아깝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자신은 큰 관심도 없는 일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눈 뜨고 못 보는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낸 말이다.
영어에도 그런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이솝 우화 중에서 한 개가 저 자신이 여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약이 올라 여물통 속에 들어가 난동을 부림으로써 다른 동물들이 여물을 못 먹게 했다는 이야기.
‘a dog in the manger (여물통 속의 개)’라는 관용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는데 소위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린다’는 놀부심사다. 자고로 개는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인간의 고약한 심성을 비유하는데 있어서 좋은 샘플이 된다.
미우나 고우나 개는 우리의 공격성을 대변한다. ‘개처럼 일해서 정승처럼 살아라’ 할 때의 개는 아주 원기 왕성한 에너지의 표상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 양키들이나 욕을 할 때는 반드시 개가 등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법.
한 양키가 다른 양키에게 말로 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은 역시 누가 뭐래도 ‘son of a bitch (암캐 아들)’이다. 여자를 욕할 때는 그냥 간단히 ‘bitch’라 하지. 우리도 상대를 비하시킬 때 ‘견자(犬子)’라 하는 걸 어쩔 도리가 없다. 말 같지 않은 말을 ‘개소리’라 하질 않나.
동족상잔의 치열한 경쟁 상태를 ‘dog-eat-dog’라 한다. 개가 개를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말. 얼마 전에 미국 프로풋볼 애틀랜타 팰컨스(Atlanta Falcons)의 쿼터백 마이클 빅(Michael Vick)이 자기집 뒷마당에서 핏불(pit bull)을 50여 마리 기르면서 투견 노름을 하다가 미연방법에 걸려든 바로 그 개싸움 이야기다.
망한다는 뜻의 슬랭에 ‘go to the dogs’라는 표현도 양키들의 개를 향한 매우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America is going to the dogs’ 하면 ‘미국이 망해 간다’라는 뜻이 된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속담을 근사하게 의역해서 역시 개를 사용한 격언으로 ‘Let sleeping dogs lie (잠자는 개를 그냥 자게 하라)’ 라 한다. ‘Every dog has his day’ 라는 격언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겠지. 이 말을 의역하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다. 여기에서 'her day’라 하지 않고 ‘his day’ 하는 것을 보면 수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때 암캐는 개 취급도 못 받는다.(?)
‘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 (늙은 개에게 새로운 트릭을 가르쳐 줄 수 없다’ 하는 속담을 도대체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까 하고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한참 억지를 써서 의역을 하면 ‘늙으면 죽어야지’가 좀 가까운 뜻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뉘앙스가 전혀 다른 그야말로 딴소리가 된다. 늙으면 죽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이란 자신을 향한 서러움이 북받치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양키 개는 한국 개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반면에 영어로 ‘lead a dog’s life’ 하면 비참한 인생을 산다는 뜻. 우리와 양키는 똑 같은 개의 생애를 어쩌면 이렇게 정반대로 나타내나 싶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 사는 개들은 상팔자요, 미국에 이민 와서 영어 하면서 사는 개들은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 해 보라. 미국에 황구 보신탕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고생을 좀 할지 모르지만 개같이 일해서 정승처럼 사는 우리들은 최소한도 양키들에게 잡아 먹힐 걱정은 안 하는 것이 나나 당신이나 얼마나 좋은가.
© 서 량 2007.10.14
뉴욕 중앙일보 2007년 10월 17일에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07/10/16/society/opinion/492413.html
[잠망경] 개가 있는 풍경
서량/정신과의사.시인 '저 먹기는 싫고 개 주기도 아깝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자신은 큰 관심도 없는 일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눈 뜨고 못 보는 인간 심...
news.koreadaily.com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럼| 41. 칠면조 유감 (0) | 2025.02.14 |
---|---|
|컬럼| 40. 독특한 어감의 배~드 (0) | 2025.02.14 |
|컬럼| 38. 행복하라는 말 (0) | 2025.02.13 |
|컬럼| 37. 여의주(如意珠)의 비밀 (0) | 2025.02.13 |
|컬럼| 36. 밑에 서기, 함께 서기 (0) | 202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