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우리는 인터넷에서 상대와 서로 인사를 차릴 때 ‘행복하세요’ 혹은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한다. 얼핏 듣기에 대단한 축복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별로 행복한 기분이 아닐 때는 그 말을 들으면서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하라는 축원은 일종의 압력일 뿐더러 때에 따라서는 모욕이다. 가난해서 쩔쩔매는 사람에게 가볍고 유쾌한 언성으로 ‘부자가 되세요’ 해 보라. 기분이 어떻겠는가.
덕담(德談)은 일년에 한 번 정도, 이를테면 음력설날 어른신이 ‘새해에 복 많이 받아라’ 하시는 것으로 족하다. 매일 덕담을 듣는 것은 고역이다. 누가 내게 월요일에도 ‘행복하세요’ 화요일, 수요일에도 ‘행복하세요’ 한다면 나도 사람이거늘 어찌 삼일동안 줄곧 행복할 수 있겠는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며 망설이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서는 우리의 은근한 미덕은 어디로 갔는가. ‘별일 없지?’ 하는 차분한 말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뭐 좋은 일 없어?!’ 하며 억지를 쓰는가 말이다. 어느새 우리는 이토록 떠들썩한 낙천주의자가 되었는가.
영어의 ‘happy’는 14세기 중엽에 쓰이기 시작한 단어로서 ‘기회(chance)’ 혹은 ‘행운(fortune)’이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즉 행복이 자기 의사에 딸려있지 않다는 점을 크게 시사한다. ‘happy’는 ‘happen(발생하다)’와 같은 어원인데 ‘happiness’란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서구적 사고방식으로는 어떤 사건이 터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양키들의 행복은 편안하다기보다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감도는 정신상태. 반면에 우리의 행복은 ‘다행 행’자와 ‘복 복’자로서 다치지 않고 운수가 좋으면 고만이다.
구글(google)에서 ‘행복’을 검색해 봤더니 ‘행복굴비’ ‘행복 한의원’ ‘행복한 치과’ 같은 광고가 눈에 띄고 ‘무념무상’이라는 사이트 바로 밑에 ‘행복짱’이라는 홈페이지도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집에서 키우던 개 이름도 ‘해피’였다.
<위키백과>에서는 행복을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는 심리라고 정의한다. 그 상태는 또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그런 성향이 있는데 그 일례로 개는 행복감을 느낄 때 꼬리를 흔든다. 옛날에 우리집 ‘해피’도 그랬다. 반면에 여자가 남자를 향해서 모종의 욕망이 일어났을 때 ‘꼬리를 친다’고 하는 상황은 행복하기 이전 상태, 즉 행복을 갈구하는 순간이다. 개는 행복해서 꼬리를 흔들고 사람은 행복을 기대하며 꼬리를 친다.
1918년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홍콩 국수회사(Hong Kong Noodle Company)’를 설립한 데이빗 정은 손님을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하여 과자 속에 듣기 좋은 말을 적은 종이를 집어넣은 상술을 써서 크게 성공했다. 그 과자를 이름하여 ‘fortune cookie’ (점괘가 들어 있는 과자)라 했다. 당신은 어느 청명한 가을 주말에 동네 중국음식점에 가서 푸짐하게 요리를 먹은 뒷끝에 ‘fortune cookie’ 속에서 나오는 말을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가느다란 종이에 깨알처럼 적힌 덕담을 읽고 내심 흐뭇해 한 적이 여러 번 있지 않았던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어떤 한국사람이 오늘도 내일도 내게 ‘행복하세요’ 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주는 것도 없이 그냥 맨입으로 하는 말. 너무나 자주 들어서 별 큰 감동이 없고 이제는 완전히 면역이 생긴 저렴한 덕담을 나 또한 네네하면서 심드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 서 량 2007.10.01
--뉴욕중앙일보 2007년 10월 6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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