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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78. 신(神)은 '좋은 것'이다

신(神)은 '좋은 것'이다 'good'은 15 세기 이전 고대영어에서 '모이다; 어울리다; 의견을 같이하다' 라는 뜻이었다. 그 말의 잔재가 현대영어의 'gather(모이다; 함께하다)'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람들이 모이거나 어울리고 공감하는 것처럼 좋은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렇게 'good'에는 인간이 표범처럼 혼자 다니지 않고 사자들처럼 집단생활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내력이 숨어있다. 인간과 사자의 공통점은 생존의 어려움에서 오는 극심한 외로움에 있는지도 모른다.당신도 알다시피 'god'와 'good'은 거의 같은 발음이다. 고대 홀란드 말로 신을 'god'이라 했고 '좋다'는 'goed'라 했다. 독일어로도 신은 'Gott'이고 '좋다'는 'gut'이다. 이렇듯 신은 좋은 것을 대표한다..

|컬럼| 217. 내 말이!

내 말이!  말도 안 되는 오해 때문에 환자가 내게 쌍소리를 한다. 영어로 듣는 욕, 'four letter word'는 우리말 육두문자(肉頭文字)에서 오는 짜릿한 굴욕감이 별로 없다. 양키들의 욕은 스펠링이 네 개이므로 발음도 짧다. 허기사 우리말 욕도 짧기는 마찬가지다. 자고로 욕이란 화급하고 간결해야 제 맛이 나는 법! 그 분열증 환자에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라며 타일러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의사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ah, and uh, even when you say the same word!' 하며 순 한국식 영어를 하는 환상에 빠진다. 말(言)의 어원을 찾으려고 사전을 뒤지고 인터넷을 쏘다녔지만 헛수..

|詩| 타고난 행복

타고난 행복 산 타는 사람들은 산과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처음부터 산을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산을 주름잡으며 넓은 보폭으로 산마루를 넘어보세요 행동자는 결코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객관은 늘 주관을 따라가기 마련이지 맞아요 저 차가운 신의 표정만 봐도 얼른 알 수 있어요 그래도 당신은 기어이 산을 타겠다고요? 詩作 노트:14년 전에는 좀 횡설수설했다 그냥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면詩가 되는 줄로 알았지 이제는 되도록 말수를 줄이기로 한다  © 서 량 2011.03.28 – 2025.04.07

2025.04.08

|詩| 물고기 듀엣

물고기 듀엣 거무튀튀 빨간 흰 바탕 비단잉어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동안 첫 소절 시작 박자 흡, 들이마신 후 척척 진행하는 재즈式 不協和音 물결에 휩쓸리는 바이올린 高音 조곤조곤 입질하네 못 참겠어 내 우울한 잉어꼬리 作動方式 사방팔방 무릎이 꺾이는 동안 거무튀튀 빨간 흰 바탕 비단잉어 詩作 노트:이 詩는 2007년 여름 ‘물고기 합창단’이라는 제목으로 썼다가, 다시 2021년 여름 수정했다가, 2025년 1월에 다시 썼다. 제목을 바꿨지. ⓒ 서 량 2025.01.25

2025.04.08

|컬럼| 489. 관음증

관음증 관음증을 한자로 觀陰症이라 쓰는 줄 알았다. 볼 觀, 그늘 陰. -- 그늘을 바라보다. 관음증은 한자로 觀淫症이라 쓴다. 볼 觀, 음란할 淫. --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얻는 증세라고 네이버사전은 꼰대스럽게 풀이한다. 트위터 단어사전은 觀淫을, 타인의 계정을 사찰하며 그 사람이 쓴 트윗과 멘션(mention) 등을 찾아 보는 것이라 산뜻하게 해석한다. 관광(觀光)이 병이 아니듯이 觀淫도 觀淫症도 병이 아니라는 견해다. 만약에 당신이 관음증을 질병이라고 우긴다면 지구촌 모든 SNS 참가자들을 다 환자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인터넷에 만연하는 성범죄는 어디까지나 죄질이 저열한 범법행위로써, 지금 나의 주제에 크게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

|컬럼| 7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우리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머니는 닭이며 송아지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팥죽을 주겠다며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초대한다.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불 꺼진 화로를 후후 불라 해서 눈에 재가 들어가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눈을 씻게, 그리고 바늘을 촘촘히 박아 놓은 행주로 따가운 눈물을 닦게 한다. 호랑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멍석 도깨비에 둘둘 말리고, 지게 도깨비에 얹혀 운반되어 강물에 첨벙 던져진다.  당신은 또 떡바구니를 들고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번번히 호랑이를 만나는 떡할머니를 기억하는가.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컬럼| 72. 목신(牧神)의 오후

목신(牧神)의 오후 인상파 음악의 거두 드뷔시가 말라르메(Mallarme)의 시에 곡을 붙여 1894년 파리 초연에서 불란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전주곡 멜로디를 당신은 기억하는가. 목신이 풀밭에 누워 비너스 여신을 포옹하는 꿈을 꾸는 그 나른하고 감각적인 화음진행을. 희랍 신화에서 목축의 신, 판(Pan: 牧神)은 상반신은 사람이면서 하반신이 염소 비슷한 동물의 몸이었다.  음악을 즐기고 요정과 춤을 곧잘 추던 'Pan'은 양떼와 목동들을 보살피는 숲과 들의 신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적막하고 어두운 숲 속에서 어떤 미신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가. 성황당 앞에 우뚝 선 고목이나 잎이 울창한 은행나무를 어느 유년의 저녁에 얼핏 올려보았을 때 등골을 스치던 전율이 있지 않았던가.  음습한 숲 속이나 바람 ..

|컬럼| 71. 소 이야기

소 이야기 카우보이(cowboy)는 1725년에 생긴 단어다. 차양이 멋진 모자에 권총을 차고 목장에서 일하는 텍사스의 양키들이 암소만 상대했던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cow'는 고대영어로 소가 음매~ 하며 우는 소리에서 생긴 의성어다. 숫소는 'bull'이라 하고 암수 관계 없이 소를 총칭하는 어휘는 어릴 적 선다형 시험지 답안처럼 보이는 'ox'또한 워낙은 숫소라는 의미였다. 'bull'은 'bole(나무 둥지)'과 어원이 같은데 14세기경 희랍어로 '부풀은 음경'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bull' 하면 수컷 냄새가 물씬 난다. 'bull's eye'는 과녁의 중심을 뜻한다. 이 또한 남성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1915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슬랭으로 'Bullshit!'은 직역하면 ..

|컬럼| 70. 크리스마스에 대한 하나의 앵글

크리스마스에 대한 하나의 앵글 'Christmas'는 1150년 경에 생긴 말로서 'Jesus Christ'의 'Christ'와 ' 'Mass (미사)'가 합쳐진 조합어다. 'Jesus(예수)'는 고대 유태어와 12세기 희랍어로 '구세주(savior)'라는 뜻이었다. 'Christ'는 'the anointed one', 즉 '성유(聖油)를 바른 사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 한국에서 7세기경 신라시대의 김유신이나 김춘추처럼 왕실이나 지배계급에게만  성씨(姓氏)가 쓰였고 영국에서는 13세기에야 같은 풍습이 생겼다. 양키들이나 우리나 모든 인간들이 각자의 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분명한 것은 예수의 이름이 지저스이고 성이 크라이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실명이 없는 시쳇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