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 126

미니 카 / 김종란

미니 카 김종란 두런두런 눈빛들을 싣고 엇갈려 지나는 장난감 미니 카 미소의 테이블은 넓다 밤은 깊어 가니 뜻 없는 미소들로 지운다 소리 지르지 않는 무게 어두움에 깊이 안긴 돌 울음 미니 카를 쥔 작은 손 손가락 마디마디 자라며 폭설이 내리고 네가 견딘 땀방울 방울 창문에 휘영청 빛이다 노란색 파란색 미니 카 장난감 집 풍경 © 김종란 2015.08.13

밝은 그늘 / 김종란

밝은 그늘 김종란 흘러 가는 중에서 하늘 구름 한 켠 눈빛 튤립을 지나서 반듯한 얼굴을 지나서 으스러지는 뼈를 지나서 여름의 옷깃을 스치며 흔들리다 흔들리다 흔들리는 세찬 바람 가득 안은 작은 얼굴들을 지나서 독 묻은 말들을 지나서 당신의 어눌한 그림자를 지나서 나무 그늘 숲 그늘 일렁이며 흔들리듯 춤 추는 빛이려니 © 김종란 2015.05.29

꽃병/오래된 교회 / 김종란

꽃병/오래된 교회 김종란 눈물 메마른 소금꽃 고통으로 일그러진 흉터 꽃으로 품으며 오랜 세월 은고(恩顧)한 무겁고 고된 두 발과 두 손 은과 금의 숲 소문의 바람 속 흔들리다 다시 허리를 펴는 장중한 붉은 빛 두 눈 지그시 감으며 끌어 안는 폭설 바람 그리고 눈부신 봄의 햇살 적막한 가을의 오후 수인(囚人)에서 자유인(自由人)으로 이슬 머금은 꽃으로 보이지 않게 보이시는 살아 있는 말씀 숨겨지며 드러나는 침묵, 그 세밀하고 부드러운 눈빛 © 김종란 2015.09.28

*흰 러닝셔츠 / 폭설 -- 김종란

흰 러닝셔츠 / 폭설 김종란 죽은 듯 침대에 누운 겨울 입김 후 불면 거울에 드러나는 겨울 침대 끝에 떨어져 있는 마른 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옮기는 마른 발걸음 이미 높이 자란 사유의 나무에 기대어 땀 닦아 내는 푸른 웃음 해 기울도록 마룻장 걸레질 하는 동안 다시 해 떠올라 온 종일 물 긷는 동안 자유로이 거울 안 바람 소리 시원하고 글 쓰는 소리 사각인 다 잠시 몸 비워 두고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거울 흰 러닝셔츠 바람 글 쓰는 어깨 위로 폭설이다 *잠시 겨울에 잠든 김기천 시인에게 © 김종란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