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사냥 / 김종란 봄사냥 김종란 매는 멀리 높이 날아 짙푸른 하늘 배회(徘徊)하며 바람에 맘껏 흔들리는 흰 벚꽃나무 우거진 그대 마을을 들여다본다 빛과 같이 조용한 흰구름과 함께 그대의 봄을 사냥한다 매의 눈은 형형(炯炯)하다 분홍빛 심장을 움켜쥔 매의 발톱, 봄은 야생(野生)이다 © 김종란 2021.04.27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9
언어의 새벽 / 김종란 언어의 새벽 김종란 날개의 끝 출렁이는 생각의 끝 재즈의 도입부가 흐르며 4월 비의 새벽, 나무는 나무대로 하늘을 연다 틈틈 연하고 부드러워 새순들, 빗방울들 초록안에 스미듯, 부여 잡은듯 흔들리지 날개의 끝은 어딘가 사람은 사람대로 연 하늘에서 눈 깜빡일 새 물기로 흔들리며 줄 서는 언어들 빗방울과 언어, 재즈의 빛으로, 하늘에 끝없는 구름장 날개를 편다 이 물기로 된 날개를 © 김종란 2021.04.2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9
건너가기 / 김종란 건너가기 김종란 연등이 그렇듯 살아있어 끌 수 없는 불 꽃으로 검은 기와 지붕밑 흐린 봄날이 지나듯 하늘에 정박한 흰 돛대들 잠시 목련이 그렇듯 숨을 모으며 낯선 곳으로 © 김종란 2021.04.2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9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의 자두 / 김종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의 자두 김종란 괘종시계 소리 들려요 어느 곳을 가든지 묵중하게 아주 가까이 몸 안에 듬직하게 자리 잡는 둔중한 시계 소리 차고 달콤한 자두를 건네 받으며 콘크리트 문을 열고 나가요 차게 서리는 물기로 끝없는 회색 문들을 바라보며 차고 달콤한 자두를 한입 베어 물어요 웃음을 터트리며 괘종시계 안에서 *미국 뉴저지 출신 의사 詩人 © 김종란 2021.04.1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8
사과의 갑옷 / 김종란 사과의 갑옷 김종란 초록이 빨강을 이야기 하는 사과는 objet 다 사과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곳 이 시간 내 눈 앞에 있음이 전부다 빨강을 품고 짓는 초록의 웃음 세잔의 갑옷을 입고 너는 빛 안에 나는 이 곳에서 무모하다 © 김종란 2021.04.10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8
거미의 장화 / 김종란 거미의 장화 김종란 알 수 없음의 장화를 신고 끈끈하게 매달려 흔들린다 다른 시간으로 가지를 뻗는 봄, 위장한다 깊은 숨을 쉰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면서 제비꽃의 들숨 벌새의 붕붕거리는 비상 비 오는 코스타리카 숲을 불러와 숨을 쉰다 바다에 떠 있는 거미 어리둥절 목숨을 늘이며 숨을 죽인다 © 김종란 2021.03.2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8
100년의 마음으로 / 김종란 100년의 마음으로 김종란 아껴 보시던 모란꽃 피면 그 마음 만날 것 같아요 서녘 들바람 지나 오느라 모란의 마음 짐작도 못하고 모란 곁에 돌아가 100년의 마음 그 꽃 그늘에 잠시 쉬다 갑니다 © 김종란 2021.01.1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7
*La Grima / 김종란 *La Grima 김종란 파란 Madrid 광장, 어느 틈 비져나온 눈물, 빛의 협곡에 갇힌다 소실(消失) 되어 반짝이는 기쁨 방울들 거리의 guitarist 반 토막 시가 입에 문 채 자유롭다 마지막이란 게 그렇다 자유롭고 무작위적이다 눈이 부시다 *클래식 기타 곡 '눈물' © 김종란 2020.10.15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7
연인 / 김종란 연인 김종란 보이지 않는다 매미가 운다 소리가 가득하다 책 페이지를 덮는다 알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무도 가만히 있고 구름도 지켜본다 빛이 차곡차곡 쌓인다 소리가 쌓인다 뜻은 없다 © 김종란 2020.08.13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6
2020 초여름에 품다 / 김종란 2020년 초여름에 품다 김종란 횡격막 부근 *누란을 품는다 2020 화려하다 병든 도시에서 유월 나무들과 아이비 넝쿨들은 보이지 않는 호수를 이야기한다 초여름 숨이 차다 방황하는 호수를 찾아 새된 비명소리 울음소리 낙타에 실으며 숨 차는 초여름 쏟아져 나오는 기침소리 담황색 바람 사라진 흔적들을 좇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함께 묵묵히 *전설의 사막도시 © 김종란 2020.06.16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