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성(城) / 김종란 초록의 성(城) 김종란 비어 있는 성(城), 비가 오기도 조용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꽃 진 후 잎을 키우는 言語 세 들어 살며 서늘한 잠에서 깨어 다시 불안하게 뒤척이다 잠든다 초록으로 스며든 音樂 서서히 서서히 짙은 초록이 머무는 중세(中世)의 성(城)으로 데려간다 지금 선 잠이 든 言語 녹색 잎 무성하나 성(城)안 꽃 진후 비 듯, 초록 꿈인 듯 일렁이며 지나간다 © 김종란 2018.05.15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0
풍경화 속의 길 / 김종란 풍경화 속의 길 김종란 처방전 빈 귀퉁이에 받아 적습니다 대책 없이 바람 서두는 봄 길이든가, 해가 가슴 속으로 낙하(落下)하는 한여름 녹음(綠陰)이든지 부칠 곳 없이 저녁 녘 다다른 검푸른 바다라 꽃 지듯 홀로 저문 풍경이네요 낯선 곳에 있습니다 저기인데 왜 다다르지 못할까 의문입니다 그림 속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괜찮다고 합니다 쉬이 도착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웃으면서 그렇답니다 © 김종란 2018.05.08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20
무한(無限) / 김종란 무한(無限) 김종란 떨어지는 봄 시간 찻잔에 받쳐든다 미소 짓는 대화들을 모아 술병에 담아둔다 겹사구라 진분홍 꽃송이들 무거워 작은 웃음소리에도 흔들린다 푸르른 눈빛에 담겨 흔들린다 푸른 잔디와 하얀 길을 짚고 가는 무한, 벚꽃송이 들어 보는 무한의 손 꽃잎에 내리는 빛 무한 © 김종란 2018.05.0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9
비(悲)의 꽃 / 김종란 비(悲)의 꽃 김종란 활짝 꽃 핀 오후 비는 오시는데 이생의 완결을 보여주듯 시작인 듯 피어나 끝인 듯 있지만 있지 않음 미소 지으며 빗줄기 멈추지 않아 온전히 비 오시는 날 흐르다가 꽃망울 피어나 시작이듯 끝인 듯 머문다 © 김종란 2018.01.25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9
미나리 아재비 보듯 당신을 보겠다 / 김종란 미나리 아재비 보듯 당신을 보겠다 김종란 미나리 아재비 보듯 당신을 보겠다 숲으로 가는 길 소리 없는 죽음 겹겹이 쌓여 향기로운 숲 남루하고 버려지는 꿈이라도 계속 꿈 꾸겠다 서러움과 잠시 짓는 미소 무거워지는 몸을 숲으로 안겠다 기억이 잊히듯 모든 날것들을 숲으로 감싸다가 © 김종란 2017.11.1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9
커다란 눈 / 김종란 커다란 눈 김종란 빛 소나기 맞으면 도시와 나, 검은 뼈가 드러난다 즈려뜨는 고양이 커다란 눈 세상에, 마음만 컸었구나! 그저 부끄러워 고양이 눈에 잠긴 야생의 숲 한아름드리 나무를 본다 숲이 빠져드는 정적, 놀람 © 김종란 2017.08.1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4
감은 눈 / 김종란 감은 눈 김종란 이 섬에 날아와 있습니다 어느 새벽, 아니면 저녁 어스름 적막하게 더욱 적막하게 그들이 서넛 서성입니다 부서지는 것은 빛입니다 눈 감은 채로 날아 가고 있습니다 야생 거위 떼 속 인지도 모릅니다 © 김종란 2017.03.29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4
북해도 / 김종란 북해도 김종란 검은 지붕 밑 뜨거운 우동 한 그릇 흰 눈 무너지는 소리 들으며 잠이 들다 푸른 하늘 내려와 햇빛 물바람 빛나는 어느 유월 라벤다 꽃 지천인 벌판에서 잠시 길을 잃는다 © 김종란 2017.01.02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4
강물이 스며드는 시간 / 김종란 강물이 스며드는 시간 김종란 페튜니아의 시간 여우의 시간 돌의 시간 녹빛 활자 손으로 짚어가며 강물에 스며드는 시간 © 김종란 2016.09.28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3
삼나무 숲을 얻었다 / 김종란 삼나무 숲을 얻었다 김종란 깊어지는 숨 이끼 덮인 돌 계단을 디디며 누군가 이미 지핀 나무 타는 냄새에 안도한다 하늘 지붕 밑으로 적멸(寂滅)하는 한 소리, 폭포 숲의 깊이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 안으며 누군가 살고 있는 나의 삼나무 숲 하늘을 지붕 삼은 삼나무 숲을 소요하며 숲에 안기는 우리의 나지막한 소리 © 2016.04.25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