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 126

초록의 성(城) / 김종란

초록의 성(城) 김종란 비어 있는 성(城), 비가 오기도 조용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꽃 진 후 잎을 키우는 言語 세 들어 살며 서늘한 잠에서 깨어 다시 불안하게 뒤척이다 잠든다 초록으로 스며든 音樂 서서히 서서히 짙은 초록이 머무는 중세(中世)의 성(城)으로 데려간다 지금 선 잠이 든 言語 녹색 잎 무성하나 성(城)안 꽃 진후 비 듯, 초록 꿈인 듯 일렁이며 지나간다 © 김종란 2018.05.15

풍경화 속의 길 / 김종란

풍경화 속의 길 김종란 처방전 빈 귀퉁이에 받아 적습니다 대책 없이 바람 서두는 봄 길이든가, 해가 가슴 속으로 낙하(落下)하는 한여름 녹음(綠陰)이든지 부칠 곳 없이 저녁 녘 다다른 검푸른 바다라 꽃 지듯 홀로 저문 풍경이네요 낯선 곳에 있습니다 저기인데 왜 다다르지 못할까 의문입니다 그림 속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괜찮다고 합니다 쉬이 도착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웃으면서 그렇답니다 © 김종란 2018.05.08

삼나무 숲을 얻었다 / 김종란

삼나무 숲을 얻었다 김종란 깊어지는 숨 이끼 덮인 돌 계단을 디디며 누군가 이미 지핀 나무 타는 냄새에 안도한다 하늘 지붕 밑으로 적멸(寂滅)하는 한 소리, 폭포 숲의 깊이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 안으며 누군가 살고 있는 나의 삼나무 숲 하늘을 지붕 삼은 삼나무 숲을 소요하며 숲에 안기는 우리의 나지막한 소리 © 201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