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79

|컬럼| 378. 대형사고

- There’s a divinity that shapes our ends, Rough-hew how we will. (Shakespeare) 우리의 끝을 다듬어 주는 신성(神性)이 있다네, 우리가 아무리 대충 마무리하려 해도. (셰익스피어) - ‘대형사고’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2020년 12월 중순 한국 정계 소식을 듣는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뒤흔드는 통에 지구인들은 초긴장 상태다. 숱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가운데 대형사고라는 말은 또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죽거나 상해를 입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대형 교통사고? 원전 사고? 화산 폭발? 아니다. 내가 듣는 대형사고라는 말은 물리적 사고가 아니다. 사회심리적 집단사고다. 네이버 사전은 대형사고를 “사람이 죽거나 심하게 다치거나 하는, 규모..

|컬럼| 377. 깊은 역할

비온(Wilfred Bion: 1897~1979)은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공헌한 영국 정신분석가로서 집단심리를 오래 연구한 결과로 정신과 영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한 집단의 기능이 원만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Basic Assumptions Group, 기본추정 그룹’이라 명명했다. 한 그룹의 소속인원들이 어른답게 성숙한 추정을 내리는 대신 어린애처럼 기본적인 추정만을 따른다는 뜻이다. 약칭으로 ‘베이직 그룹’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➀ 의존 그룹(Dependency Group) - 그룹멤버는 독자적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룹리더에게 의존한다. 리더는 부모 역할을 하면서 종종 신격화된다. 걸핏하면 상관에게 문의를 구하는 직장인도 마찬가지 경우. ..

|컬럼| 376. Sounds Good?

The sound of the Earth turning (Provided by NASA): 지구가 회전하는 소리 (미항공우주국 제공) 가을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11월 중순에 하늘을 헤집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간들간들 땅으로 떨어지는 마른 잎새들을 본다. 낙엽을 재촉하듯 간간 돌풍이 일어난다. 창문을 여니 바람 소리가 시원하다.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1894)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의 첫 연이 생각난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아니에요/ 그러나 잎새들이 매달리며 떨고 있는 동안/ 바람이 지나가는 거지요.” 로제티는 바람의 존재 여부를 시각적으로 처리한다.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바람이 소리를 내면서 창밖을 스쳐간다. 창문의 커튼을 내..

|컬럼| 375. 한쪽은맞고다른쪽은때린다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았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타이틀이 흥미를 돋군다. 미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말과 생각의 맞고 틀림이 당신과 나를 잔뜩 긴장시키는 2020년 11월 초순이라 더욱 그렇다.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 네 축이 네 가지의 조합을 빚어낸다. 영화 타이틀은 현재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솎아내어 적폐청산이라도 하려는 듯 금방 덤벼들 기색이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다, 하면서 과거지향성 냄새를 풍기면 어떨까 하는데.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도 다 틀렸다! 또는 둘 다 맞다! 하며 선언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맞고 틀림에 대한 판단은 누가 내리는가. 나? 너? 시사비평가? 내로남불을 내..

|컬럼| 374. 가을 햇살은 비스듬하다

초추의 양광이 뚜렷한 2020년 가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퇴근길 차창을 스치는 낙엽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소슬바람이 불어온다. 수목들의 잎새가 땅으로 떨어지는 일이 순조롭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다. 가을바람에 우리의 슬픔이 숨어있다. 당신은 혹시 기억하는가. 옛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시작 부분을. –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비는 처량히 내리고…” 감상(感傷)에 빠지는 가을이다. 마음 놓고 슬픔을 곱씹어도 괜찮다. 슬픔은 어수선한 심사를 갈무리해준다. 하늘하늘 춤추며 흙을 향하여 추락하는 잎새..

|컬럼| 63. 정신병이 달(月)에서 온다더니

'He is a lunatic'이라는 표현은 시쳇말로 어떤 사람이 '뿅갔다'는 뜻. 사람이 머리가 팽! 도는 순간 옆 사람이 잘 들으면 '뿅!'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모양이다. 서구인들은 13세기경부터 사람이 미치는 것이 달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위의 표현은 한 사람의 정신상태가 달 모습이 바뀌듯 계속 변덕을 부린다는 뜻에서 비롯됐고 'lunatic'이 노골적으로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은 1377년 고대 불어에서였다. 달이 바닷물을 밀고 당겨서 밀물과 썰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변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사람 몸 혈액의 소금 농도도 바닷물의 소금 농도와 같다. 저 거대한 바다를 뒤흔드는 달과 지구의 애틋한 견인력이 나와 당신의 적혈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컬럼| 372. 당신의 이름을 나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와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 시절 음질이 좋지 않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한 가요가 떠오른다.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가사와 멜로디만 생생하다. 아무리 뒤져봐도 인터넷에 뜨지 않는 그 노래 가사가 이렇다. 당신의 이름을 나는 알고 싶소/ 그리고 내 이름도 아르켜 드리리다/ 우리가 서로서로 이름을 앎으로써/ 오늘의 사랑을 맺을 수 있고/ 그리고 내일도/ 기약할 수 있지 않소 여가수는 남녀가 하는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통성명을 내세운다. 그 절차에 착수하는 세레나데를 부른다. 남자가 작업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여자 쪽에서 “What’s your name?” 하고 물어보는 정황! 에덴의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에 대뜸 손을 댔던 이브처럼 그녀..

|컬럼| 13. 러브 스토리

당신은 1970년도 영화 ‘러브 스토리’의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말은 작년 미국영화협회에서 선정한 100개의 유명한 영화대사 중에서 13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한 바 있다.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무슨 행동이건 용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어딘지 참 뻔뻔스러운 구석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시인이자 작곡가면서 기타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다가 아깝게도 마흔 살에 정신병자에게 사살당한 비틀즈의 존 레논 (John Lennon)은 “Love means having to say you're sorry every fifteen minu..

|컬럼| 371. 내 배꼽의 유리창

30대 후반의 마이클이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으로 입원중이다. 망상이나 환청증세 없이 간호사들을 희롱하고 성가시게 구는 말썽꾸러기다. 다른 병동에서 정신과의사를 두들겨 팬 후 그가 내 병동으로 후송온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아침 회진 시간에 그는 자기가 요즘 평소보다 더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스쳐가는 바람에 잠을 설치고 다음날 정신집중이 안된다 한다. 밤에 공상(fantasy)을 심하게 하면 그럴 수 있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는 활짝 웃으면서 셔츠를 훌렁 들어 올려 배를 보여준다. 모두 힐끗 그의 커다란 배꼽을 보았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저는 원래 기분이 좋으면 남에게 배를 보여주는 습관이 있다고 답한다. 내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덧붙이면..

|컬럼| 315. 보여주고 싶은 욕망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1901~1981)이 설파한 “응시(gaze)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 생후 한두 살짜리 아기가 물끄러미 거울을 응시한다. 그는 호기심에 매료되어 애를 태우다가 거울 속 영상이 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아기는 나중에 거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지하면서 그 사람의 눈에 비춰진 자기 모습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좋은 버릇을 키운다. 아기가 기어가는 동안 의자에 부딪치지 않는 것도 당신이 전봇대와 충돌하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것도 다 이 “응시” 덕분이다. 라캉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강력한 힘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를 응시할 때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같은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