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직원들과 성격(性格, personality)에 대하여 토론을 벌인다. 성격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결국, ‘한 사람의 특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을 일컫는 것이라는 짧은 결론을 내린다.
성격은 기분, 생각이나 태도로 남들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렇다. 성격은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인생사다. 나는 “Personality is everything!” 하며 힘주어 덧붙인다. 당신과 나의 모든 대인관계에서 사실 ‘성격이 전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종사하는 정치, 사회, 경제, 종교, 연예 등등 제반 분야에 걸쳐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
영어의 ‘personality, 성격’에 비하여 한자어로 인격(人格)이라는 말이 따로 있는데 사전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 풀이한다. 인품이라는 비슷한 말도 있다.
품격(品格)을 생각한다. 물건 品, 격식 格. 어떤 사람이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당신이 말하는 순간에 문자 그대로 그가 물건 취급을 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품(人品)을 직역하면 ‘사람 물건’이라는 뜻인 것을.
품격은 사전에 ➀물건의 좋고 나쁨의 정도 ➁품위(品位), 기품(氣品)이라 나와있다. 온통 물건 品자 투성이! 品은 입이 셋이 모여 이루어진 회의문자로서 많은 사람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면서 물건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는 모습이라 한다. 품격이 높은 상품을 고품격이라고 지칭한다. 그런 경우에 물론 가격(價格)이 높아지지.
상품성(商品性)이 농후한 品자를 빼고 格만 쓰는 수도 많다. 격이 높다, 낮다 하는 식으로. ‘나무 木’에 ‘각자 各’이 합쳐진 ‘격식 格’으로 시작하는 격상(格上), 격하(格下), 격조(格調) 같은 말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체크 무늬’라 부르는 반듯한 네모들이 나란히 이루는 격자(格子) 무늬!
‘격자판’을 뜻하는 영어로 ‘grid’라는 단어를 근래에 자주 듣는다. 당신은 옛날 화학시간에 배운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를 기억할 것이다. 그 주기율표처럼 보이는 엑셀 첨부파일의 질서정연한 네모 칸에 갇혀진 자신의 이름을 직장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확인하는 당신이 아니기를 바란다.
범죄영화에서 사이코패스가 이름, 생년월일, ‘Social Security Number’ 등등을 삭제해서 수사당국의 격자판에서 사라졌을 때, “He is off the grid.”라고 강력계 형사는 뇌까린다. 온라인 해킹을 당하기 쉬운 요즘 세상에 그 사이코패스는 무사태평하다.
그만큼 우리는 조지 오웰의 문제소설 ‘1984년’에서 예견한 대로 ‘Big Brother’의 격자판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이다. 내가 알고 기억하는 나보다 ‘Big Brother’의 기록이 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재미있다. 자신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구글검색을 해보라. 정답이 나올 것이다.
어원학을 다 떠나서 ‘personality’를 ‘사람다움’이라 옮길까 한다. (‘-al’로 끝나는 형용사는 ‘-같은, -다운’이라는 뜻.) 성격, 인격처럼 ‘격식 格’의 뉘앙스가 전혀 없는 단어다. 格은 동양 특유의 수직적 사고방식이 철철 넘치는 낱말이다. 가격, 물건값의 높고 낮음과 다르지 않다. 중력 때문에 사과가 나무에서 툭, 떨어지듯 격도 그렇게 떨어진다. 우리는 항상 위아래가 관건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은 어떤가. 찬물도 격이 높은 윗사람이 먼저 마신다는 생활습관이다. 그렇다면, 혀를 데기 쉬운 뜨거운 물도 윗사람이 먼저 마시겠다고?
© 서 량 2021.10.17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10월 2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79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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