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정신과 수련의 시절에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Keep your chin up! (턱을 치켜 드세요! - 힘 내세요!)”라 한 적이 있다. 그 퉁명스러운 60대 여자는 그런 말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발칵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낯이 뜨거웠다.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건 마치도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가 말한다. 내과의사가 배가 아픈 환자에게 아프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셈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하세요! 하는 싸구려 입버릇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will power, 의지력(意志力)’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게 뭔지 모른다며 설명을 해달라 해서, ‘will’은 의도(意圖), 즉 무엇을 원하는 상태라 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원하는 예를 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까지 침을 튀기면서 설명한다.
한자어 ‘뜻 意’를 생각한다. 의도, 의지 외에도 의사(意思), 의견(意見), 의욕(意欲), 의의(意義) 같은 말들이 입에 붙어 다닌다.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과 견해와 욕심과 옳음을 주장하고 싶은 법이다.
의미(意味, 순 우리말로 ‘뜻’)에 ‘맛 味’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니까 의미라는 한자어는 대뇌기능이 아니라 미각이다. 말초감각 중에 하나다. 사물의 뜻을 알기 위하여 꼭 그렇게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무엇이든 단무지를 곁들어 먹어봐야 된다는 재래식 중국적 사고방식이다.
사물의 의미라는 것은 개개인의 입맛처럼 주관적인 기능에서 태어난다. 삼라만상의 의미는 팩트가 아니라 미각적(味覺的) 해석일 뿐. 그것은 개인의 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물리학을 제외한 우주의 객관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은 무의미하다. 무색, 무취, 무미(無味)!
‘뜻’에 해당하는 ‘meaning’은 좀 드라이하다. 13세기에는 ‘기억하다, remember’라는 의미였다. 뜻은 연상작용에서 온다. 전인도유럽어에서는 의도, 의견, 생각이라는 말이었으니 이 또한 주관적 심리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철학의 거성, 칸트(1724~1804)의 ‘thing-in-itself, 물자체(物自體)’ 개념이 당신과 나 사이에 훌륭히 거론된다. 내가 은하수에 고추가루라도 뿌려 맛보지 않아도 내가 자는 사이에도 은하수는 자체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당신이 은하수에 애써 부여하는 의미는 철두철미하게 무의미하다.
김춘수(1922~2004)는 그의 대표 시 ‘꽃’에서 꽃의 이름에 큰 의미를 하사했다. 이름이 없는 꽃은 한갓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1976년도 저서 ‘의미와 무의미'에서 그는 시의 무의미성을 성심성의껏 선포한다. 구태의연한 시적 자아의 설렘을 떠나서 언어의 즉물성(卽物性)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괜스레 물자체, 즉물성 같은 어려운 말을 해서 당신에게 좀 미안하다.
초현실주의 시류(詩流)가 나를 휩쓴다. 개꿈,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몽, 꿈을 각색하는 자각몽, 등등 모든 꿈과 초현실은 내게 각별히 유효하다. 김춘수가 초현실주의의 텃밭이었다는 생각을 간간 한다.
옛날 그 환자에게 니체의 명언을 풀이해서 설명해줄 걸 그랬다. “삶은 고통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그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고. 니체가 신의 사망선고를 내린 후 삶의 니힐리즘에 대항하는 그의 초인사상을 알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줄 걸 그랬지, 정말.
© 서 량 2021.11.14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11월 1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1/11/16/society/opinion/20211116173107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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