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79

|컬럼| 351. Fishwife 스토리

꿈의 해석에 대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의 해석은 똥꿈이나 돼지꿈 따위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는 세간의 해몽과 엄청나게 다르다. 꿈은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 있으므로 집단의식에 입각한 공식대로 풀이한다면 죽도 밥도 안된다. 꿈은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사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정신분석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하는 편이다. 꿈을 해석하는 사람 또한 스토리텔링에 몰두한다. 두 사람이 숙연한 표정으로 마주앉는다. 이들의 대화는 과학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스토리에 전념할 때 둘 사이에 힐링이 일어나는 신비한 절차가 이루어진다. 어린아이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어머니가 읽어주는 베드타임스토리는 또 어떤가. 늑대, 곰, 혹은 남매를 가마솥에 ..

|컬럼| 365. ADHD

내과의사와 환자 얘기를 하다가 “Psychiatrists are not real doctors! - 정신과의사들은 진짜 의사가 아니야!” 하며 농담 비슷한 말을 했다. 환자가 병동 직원을 심하게 때린 정황이다. 내과의사는 환자가 복용하는 약의 혈중농도가 정상에 속하지만 좀 낮은 편이라 복용량을 높이면 좋겠다 한다. 삐딱하기로 소문난 그 환자에 익숙하지 못한 새파란 신참내기 직원이 맞았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 혈중농도가 미흡해서 사람을 치다니? 다른 정신과의사가 같은 환자를 놓고서, 그 놈은 ADHD 환자로 진단명을 때리고 거기에 맞는 약을 쓰는 게 어떠냐, 하며 대충대충 하라고 조언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꾸준히 각광을 받고 있는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컬럼| 364. 인 마이 포켓

어릴 적에 가끔 듣던 엉터리 영어, 인 마이 포켓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길에 웬 푼돈이 떨어져 있길래 인 마이 포켓 했다고 좋아하던 동네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한 인터넷 콩글리시 사전은 이 표현을 ‘횡령하다, 착복하다’로 풀이한다. 푼돈이 아닌 엄청난 금액의 공금을 한 여자가 인 마이 포켓 했다는 의혹이 연일 신문에 실리는 2020년 5월 말경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더니 자기 돈이 아닌 돈을 자기 주머니에 꾸역꾸역 넣다 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 금액이 점점 커지는 이치에 실감이 간다. 주인 없는 물건이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공금을 고의적으로 축내는 짓을 시쳇말로 도둑질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위선을 싫어하는 당신은 횡령이나 착복 같은 어려운 한자어보다 도둑질이라는 알아듣기 쉬운 말이 더 ..

|컬럼| 363. 멋, 맛

옛날 서울 종로에 만나당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팥앙금이 듬뿍 들어간 만나당의 찹쌀떡 맛이 마냥 그립다. 만나당은 맛이 좋다는 뜻의 ‘맛나다’ 외에도 ‘만나다’를 연상시킨다.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반갑게, 또는 조심스럽게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긴 세월이 지난 요즘 한국은 빵집보다 ‘맛집’ 소식이 대단하다. 만나당 말고도 ‘맛나당’이라는 음식점 이름이 눈에 띈다. 사람보다 음식이 우선이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emotional eating, 정서적 섭식’ 증상이 발생하는 2020년 5월 중순이다. 불안과 공포를 정성껏 삭히는 우리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알뜰살뜰한 여인들이 업로드한 음식 사진들을 본다. 좋은 조명과 두드러진 색채감으로..

|컬럼| 362. 소통, 쇼통, 또는 소똥

병동환자 로버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 모두 스트레스가 심한 판국에 약을 안 먹겠다니? 아무래도 법정에 가서 판사가 내리는 결정을 따라야 되겠다.” 환자의 인권존중 때문에 강제 투약은 꼭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전에도 법원의 강제 치료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그는 걸핏하면 자기가 젊었을 때 보디 빌딩을 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셔츠를 들어올려 거북이 배처럼 희미하게 금이 간 복근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린다 맥칼리스터(Linda McCallister)의 저서, “I wish I’d said that, 내가 그걸 말했었으면”(1992)에 나온 대화방식 여섯 가지를 여기에 이렇게 간추린다. ➀ 귀족형 –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컬럼| 361. 말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

-- 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 (Nietzsche) -- 삶은 시달림이다.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 시달림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니체) 제임스가 죽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망원인이었다. 몸이 뚱뚱하고 지능이 남들보다 많이 낮은 반면에 성격이 참 원만했던 제임스가 엊그제 죽었다. 내가 묻는 말은 전혀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아무 결론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해도 늘 좋은 기분을 남겨주는 병동환자였다. 내과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저도 제임스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나는 코로나 환자와 가족과 응급실 의사들의 미치광스러운 나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지구..

|컬럼| 360. 워리

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뉴욕 의료인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약사, 슈퍼마켓 종업원, 배달업자, 의사같은 직업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이다. 차가 몇 대 안 보이는 유령 도시의 고속도로를 나 또한 매일 질주한다. 병동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들의 민낯이 편안해 보인다. 한 직원이 부럽다는 듯이 투덜댄다. “They are not anxious at all” - 저들은 도무지 걱정을 하지 않네요. ‘anxiety(걱정, 두려움)’, ‘anguish(고민)’, ‘anger(분노)’처럼 ‘앵~’으로 시작되는 말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좁고, 답답하고, 옥죄인다는 뜻이었다. 노여워서 토라진다는 뜻의 ‘앵돌아지다’라는 우리말도 ‘앵’자 돌림이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그 또..

|컬럼| 359. Social Distancing

인적이 끊어진 이탈리아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할 뿐, 배경음악이 없는 화면진행이 한동안 지속된다. 한 사람이 방에서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이어진다. 2020년 3월 어느 주말,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대신 나는 티브이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전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독 이탈리아만을 집중적으로 강타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국가중 이탈리아의 사망율이 최고치로 9.5 퍼센트.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들 열 명중 거의 한 명이 죽는다는 통계가 섬뜩한 현실로 우리를 엄습한다. 중국은 일찌감치 질병이 발생한 원조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이 버럭버럭 소리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바이러스의 숙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눈에 뵈지 않는 바이러스를 경계하고 회피하려..

|컬럼| 358. 마스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간다. 젊은 여자, 은퇴한 대학교수, 급하게 라면을 먹고 편의점을 나온 대학생, 정치적 이념이 강한 중년 남자, 또는 겁 없는 무신론자들이 제각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간다. 마스크는 2020년 3월 현재 중국 우한이 발원지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내는 방패막이다. 마스크는 투구를 쓴 고대의 병사들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적군의 화살을 막으려고 방패로 몸을 가리는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마스크는 절대절명의 구명책이다. 마스크는 은성한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소박한 가면이다. 마스크는 자신이 포식동물의 먹거리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할로윈데이 가면의 무서운 이미지로 전달한다. 마스크는 포식성이 강한 상대방을 혼동에 빠뜨려서 내 안전을 꾀하려는 방어..

|컬럼| 357. 가장 개인적인 것

영화 ‘기생충’! 좋은 집에 사는 박사장 가족과 반지하에서 사는 김씨 가족은 처음에 서로 공생(共生)하는 관계였다. 김씨 가족 전원은 박사장 집에서 일하는 어엿한 피고용인들이었다. 한쪽이 다른 쪽에 빌붙어 기생(寄生)하는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박사장 저택의 어두운 비밀 지하실에는 가정부의 남편이 숨어서 오랫동안 무위도식하고 있다. 좋게 말해서 그는 식객(食客)이다. 밉던 곱던 한 사람을 기생충(寄生蟲)이라고 벌레 취급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다. 2020년 2월 9일에 ‘기생충’이 오스카 상 역사상 외국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자랑스럽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미국의 노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명언을 인용한다.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다. (The 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