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84

|컬럼| 5. 만족이 주는 슬픔

‘sad’는 ‘슬프다’는 말이다. 양키들은 이 말을 참 싫어 한다. 우리들이 슬픔을 찬양하는 것처럼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슬픔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sad’는 ‘만끽하다; 만족시키다’를 의미하는 ‘sate’와 그 어원이 같다. ‘sate’는 라틴어의 ‘satis’에서 유래했는데 ‘충분하다’는 뜻. 만족스럽다는 뜻의 ‘satisfy’는 ‘satis’의 끝에 ‘fy’만 붙인 말이다. 충분하면 만족스럽지만 만족은 슬픔의 서곡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흥부전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놀부였다. 예수의 생애 마지막 12시간을 기록한 2004년도 영화 멜 깁슨의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도 로마병정이 예수를 고문할 때 ‘Satis!’ 라는 라틴어가 자주 나온다. 그때 영어자막은 ‘Enou..

|컬럼| 4.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

2003년에 출판된 댄 브라운의 소설 세계적 베스트 셀러 의 주인공은 하버드대학의 상징학(symbology) 교수다. 그는 말이나 그림이나 사물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파헤쳐 알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학자다. ‘symbol’의 현대적 의미는 ‘상징’이다. 그러나 문헌에 의하면 이 단어가 로마와 그리스와 불란서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1434년 경에는 ‘기독교적 믿음’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정통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이교도와 구분하기 위하여 어떤 토큰(token: 징표)을 지니고 다녔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남들에게 제시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나중에 ‘symbol’은 ‘징표’ 라는 의미로 변천했다. 고대 그리스 말로 ‘sym’은 ‘symphony’ ‘sympathy’에서처럼 ‘together’(함께)라는..

|컬럼| 304. 진실을 말하고, 도망쳐라!

27살 젊은 나이에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국방부장관에 해당되는 병조판서가 됐다가 그 이듬해에 역모 죄로 능지처참을 당한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을 생각한다. 그를 음해한 류자광(柳子光, 1439~1512)의 계략을 점검한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이조 초기를 살았지만 시쳇말로 태종의 외손자인 남이는 금수저, 서자출신인 류자광은 흙수저 출신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류자광은 여러 왕을 섬기며 파란곡절의 벼슬살이를 하다가 말년에 귀양을 떠나 74살에 장님이 된 후 병사했다. 그는 조선왕조 역사에 출몰한 3대 간신 중 단연 첫 번째로 손꼽힌다. 남이의 시, 북정가(北征歌)를 생각한다. -- 백두산 바위에 칼을 갈아 다 닳게 하고 / 두만강 물을 말에게 먹여 다 없앤들 /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안..

|컬럼| 3. 머리 없이 웃는 양키들

심하게 웃는다는 뜻으로 우리말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표현이 있다. 배꼽을 잡는다는 것은 배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심리상태다. 우리 모두가 아늑한 모태에서 태아로 지냈던 시절에 생명의 원천이던 탯줄이 닿은 부분, 즉 배꼽이 몸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영어로는 같은 표현을 ‘laugh one's head off’라 한다. 직역을 하면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웃는다’는 뜻. 우리는 배꼽이 몸에서 일탈하는 것을 걱정하는 반면에 양키들은 (머리가 떨어져서) 머리가 없이 웃는다는 점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발상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웃는다는 사고방식을 현명한 당신은 얼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지..

|컬럼| 2.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는 남자들

영어의  ‘g’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 수상한 단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몇 개는 다음과 같다. 이 짧은 말들은 감탄사 혹은 간투사로 쓰이는 것이 통례이고 그 분위기에 역점을 두기 위하여 번거롭지만 문자로 표기할 때는 느낌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Gosh! Golly! My goodness! Gad! God! My god! Oh, my god! Gee!  굳이 우리말로는, 이런! 참나! 저런! 아이고! 아이구! 어쩌나! 하나님 맙소사! 어머나! 제기랄! 등등으로 옮겨진다. ‘Gosh!’ 같은 표현은 좀 거칠게 들리면서 ‘My goodness!’ 하면 아주 여성적이고 호들갑스럽게 들린다. 이 말이 아마 우리 말의 ‘어머나!’의 뉘앙스에 가장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이 간투사들은 ‘Gee!’만 제외하..

|컬럼| 1. 올라타기를 좋아하는 양키들

70년도 초반만 해도 담뱃불 좀 빌립시다, 할 때 ‘Do you have a light with you?’ 했다. 그런데 80년도쯤에는 ‘You got a light on you?’ 라는 표현을 자주 들었다. 요사이는 돈 좀 있어? 할 때도 ‘Do you have some money on you?’ 한다. 일대 일로 하는 정신상담도 ‘one to one therapy’라고 했든데 요사이는 ‘one on one therapy’라 한다.  어느 사이에 영어 구어체에서 ‘with’와 ‘to’가 ‘on’으로 대치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with’나 ‘to’의 동행의식이 ‘on’의 지배의식으로 바뀐 것이다.  ‘on’ 하면 ‘There is a book on the desk’, 할 때처럼 무엇이 무엇 ‘위에’ ..

|컬럼| 61. 이긴다는 것은

'victory'는 전쟁에서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 그 땅을 정복한다는 의미의 14세기 라틴어 'vincere'에서 왔다. 'win'도 승리한다는 말. 얼른 들으면 같은 뜻처럼 들리는 'victory'와 'win'은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어원에서 왔다. 전쟁에 승리했을 때는 'victory'라 하고 올림픽 경기에서 이겼을 때는 'win'이라 하지. 정복하기와 이기기는 그 뉘앙스가 다름을 당신은 부디 명심할지어다. 'win’은 고대영어로 'winnan'이었는데 본디 뜻은 '노력하다; 애쓰다; 일하다; 싸우다'였다. 경기나 시합에서 이긴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62년경. 이긴다는 것은 애쓰고 노력하고 자신과 싸우는 고독한 작업이다. 상대방의 실수를 학수고대하는 그런 야비한 경쟁심의 발로가 절대로 아..

|컬럼| 26. 불경스러운 말들

'F--k you!'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이 심심치 않게 듣는 영어다. 이 표현이 험악한 욕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0년경, 일차세계대전이 끝난 즈음이었다. 'F--k me!'는 'x해 줘!' 하는 매우 저속한 말로서 대개는 여자가 남자에게 한다. 이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발언을 ‘Rated R’ 영화에서 깜짝 놀라며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한마디로 양키들의 의사표시는  대담하다.  'F--k you!'가 남녀를 불문하고 친한 사이에 부드러운 억양으로 쓰일 때는 ‘말도 안 돼는 소리 집어 쳐!’라는 뜻이 된다. 쌍소리에 과민한 당신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뒤의 문맥을 연구해 볼만한 화법이다. 'motherf--ker'는 우리나라의 육이오 사변이 발발한 1950년도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유행시..

|컬럼| 136. 새빨간 거짓말

지난 5월에 맨해튼 호텔 여종업원 강간 혐의로 전 IMF 수석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이 체포됐던 뉴스는 큰 충격이었다. 요사이 그 종업원의 행실이 대단히 수상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일을 치른 후 돈을 받지 못해서 그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는 주장이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법정은 그녀가 진술한 많은 거짓말을 대서특필했다. '거짓말'은 '거죽(겉: 表皮)말'이 변한 단어라고 우리말 고어사전은 풀이한다. 속 생각을 감추고 거죽으로 하는 겉치레 말이 즉 거짓말인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거짓말을 남긴다 하면 심한 소리일까. 그 호텔의 잡역부가 법원에서 한 거짓말은 위증(僞證)이라 한다. '거짓 위(僞)'는 '사람 인'변에 '할 위'로 이루어진 문자다. 이쯤 해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이란 '사람을 ..

|컬럼| 156. 뱀 이야기

제우스의 사자(使者)인 희랍 신화의 헤르메스(Hermes)는 평소에 늘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 지팡이 꼭대기에는 비둘기의 날개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그 밑으로 뱀 두 마리가 꼬불꼬불 타고 오르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옛날 한국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칼라에 달고 다니던 배지가 바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새겨진 'Caduceus' 였다. 막대기와 날개와 뱀이 합쳐진 군의관 배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헤르메스는 또 저승사자 역할도 했다. 그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을 지도하는 친절하고 발 빠른 관광 가이드였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이를테면 일종의 정신과 의사로 군림한 것이다. 로마 신화에서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신은 머큐리(Mercury)였다. 머큐리는 체온계의 빨간 수은을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