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99. I'm Game, 오징어 게임!

서 량 2021. 10. 4. 10:58

 

2021년 9월 17일에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시작한지 보름 지난 10월 2일 현재 전세계 83개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빚에 시달리는 삶에서 탈피하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살벌한 표정을 읽는다. 살기 위하여 상대를 패배시켜야 한다. 패배자들은 즉석에서 총살당한다.

 

생존은 약육강식의 법칙만 따르지는 않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민첩한 반사작용, ‘달고나(설탕 뽑기)’가 요구하는 창의력, ‘줄다리기’ 단체경기에 이길 수 있는 팀워크의 노하우, ‘구슬치기’ 게임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속임수의 발로, 등등.

 

아, 또 있다. ‘징검다리’ 게임에서 사람 몸 무게에 와스스 무너져 깨지는 약한 유리와 강력한 가공유리가 여기저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경기자들을 충동질한다. 그 둘을 감별하는 전문가의 고충이 안쓰럽다. 마지막 게임은 465명중 살아남은 2명이 격하게 부딪치는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은 몸싸움이 심하게 일어나는 어린이 놀이다. 오징어 모양의 삼각형, 사각형, 그리고 동그라미의 구획선 안팎에서 서로를 제키고 몰아내는 공격과 수비가 잇따르는 쟁탈전이다.

 

질문이 솟는다. 왜 우리는 승부에 생명을 거는가. 그런 잔인한 게임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떤 정신상태인가.

 

근래에 ‘I am game!’이라는 관용어를 자주 듣는다. ‘나는 게임이야!’라 직역할 수 있는 이 말은 내가 어떤 일을 할 용의가 있고, 원하고, 준비가 됐다는 의사표시다. 인터넷 영어 사이트에 ‘~ 하고 싶어, 할게, 할래, 준비됐어 (I am ready)’라고 나와있다.

 

‘game’은 12세기 고대영어에서 ‘기쁨, 유희’라는 의미였다. 고대독일어로 사람이 모인다는 뜻이었으니까 사람이 모이면 기쁘고 즐겁다는 뜻이 숨어있는 단어가 바로 ‘game’이다. 여럿이 모여 게임을 하면서 상대를 죽이려 하는 승부욕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본성이 소스라치게 역설적이다.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타겟으로 삼는 대상관계(object relations) 원칙을 따른다.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는 게임의 참가자이기도 한 거부(巨富)의 노인이었다. 뇌암 말기로 죽음을 기다리는 그는 거액의 보상금을 탄 젊은 주인공과 이런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다.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 (재미?) - 나는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조해 본 적이 없어. - (당신은 왜 그 안에 들어온 거야?) - 어릴 땐 말이야, 친구들이랑 뭘하고 놀아도 재밌었어…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느끼고 싶었어. 관중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말이야.” 그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없지!”

 

노인은 사람을 믿지 않고 게임에 이기는 재미만 추구했던 것이다. 게임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대상관계,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젊은이가 눈 내리는 길가에 쓰러진 노숙자를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 반대하는 내기를 건다.

 

노인의 임종 직전 12시를 알리는 괘종시계가 뎅뎅 울린다. 그리고 경찰이 노숙자를 차에 태우는 장면을 보며 주인공이 말한다. - “사람이 왔어. 당신도 봤지? 당신이 졌어.” 그때 나는 중얼거린다. - "뭐니 뭐니 해도 사람과 어울리는 재미가 사람을 이기는 재미보다 훨씬 더 짜릿한 법이거늘..."

 

© 서 량 2021.10.02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10월 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77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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