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05. The Food Is Terrible!

서 량 2021. 12. 27. 09:32

 

도널드는 젊었을 때 친척과 다툼 끝에 과실치사를 저지른 후 오래 동안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왔다. 60대 중반. 그는 현재 내 병동에 머물고 있다.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사고형식장애, ‘formal thought disorder’ 증상을 보이면서.

 

대화에 있어서 내용보다는 형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말과 말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때 상대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누가 당신에게, “나는 겨울이 좋아. 도서관 닭고기는 맛이 없어!” 한다면 두 짧은 문장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서 당신은 몹시 어리둥절할 것이다.

 

당신과 나는 생각과 생각 사이에 객관적인 연결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철두철미한 언어의 자유는 있을 수 없다. 세련된 언어감각으로 초현실주의를 추구하는 현대시라면 혹시 모르지만.

 

전에 도널드는 병동에서 하우워드와 주먹다짐을 벌인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주는 약을 거부한 적이 있다. 그때 약을 안 먹은 이유를 물었더니 거두절미하고 “하우워드!” 하고 응답했다.

 

하우워드에게 얻어맞고 홧김에 약을 거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 명료한 언어능력이 없는 도널드! 내막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대답은 난센스지만 앞뒤를 맞춰보면 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이해가 가는 노릇이다.

 

엊그제 도널드가 또 다른 환자에게 얻어맞고 왼쪽 눈두덩이 퉁퉁 부었다. 싸운 이유는 다른 환자가 품은 시샘 때문이었다. 도널드를 퇴원 시키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병원 캠퍼스에 있는 클럽 하우스에 갈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 극심하게 질투가 났던 것이다.

 

젊었을 때 보디 빌딩을 해서 아직도 배에 박힌 임금 왕자(王字)를 종종 과시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때린 그놈을 혼내 주지 않은 이유는 그가 나보다 분열증 증세가 더 심하기 때문이었어!”

 

12월 23일, 병동 간호원실에 한국집에서 산 케이크를 갖다 놓았다. 모두들 케이크가 맛있다고 한다. 오후에 도널드가 복도에서 내 쪽으로 뛰어 와서 말한다. – “The food is terrible!, (병원) 음식이 끔찍하게 맛이 없어요!”

 

그가 연이어 묻기를 음식을 끊고 물만 먹으면 안 되냐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얼른 엄격하게 대답한다. 음식을 먹어야 산다는 바보 같은 내 말을 듣기가 무섭게 그는 오케이! 하며 자기 방 쪽으로 뛰어간다.

 

고대영어에서 ‘food’는 전인도유럽어 ‘pa-‘에서 생겨난 말로서 ‘먹이를 주다’는 동사의 뜻에 ‘보호해주다’는 의미도 있었다. 지금도 그 잔재로 ‘companion(반려)’, ‘company(회사)’ 같은 단어에 ‘pa-‘가 남아있다. ‘pasture’는 명사로 ‘초원’이라는 뜻이지만 동사로는 ‘가축을 풀밭에 내어 놓아 풀을 먹이다’라는 의미.

 

어릴 적에 부르던 시편 23장 찬송가가 생각난다. “(전략)..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네”(He makes me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the still waters) 여기에 나오는 ‘pastures’는 잔잔한 물가에서 멀지 않은 곳!

 

지금껏 한 번도 병원 음식에 대하여 불평한 적이 없는 도널드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던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원학적으로, 코로나 판데믹이 또다시 난무하는 2021년 말에 충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안감이 표출된 것일까. 어디를 살펴봐도 푸른 풀밭을 찾을 수 없는 정신병원 캠퍼스를 아프게 감지했기 때문이었을까.

 

© 서 량 2021.12.26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12월 29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1/12/28/society/opinion/20211228171713477.html

 

[잠망경] The Food is Terr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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