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화단은 묵상 중 / 최양숙

서 량 2011. 11. 4. 05:12

 

 

 화단은 묵상 중

 

                                최양숙

 

 

씨방이 여문 도라지 대를 뽑으려다

내년에 밝힐 보랏빛 초롱을 떠올리며 밑동을 자른다

잿빛 솜무더기마냥 풀어진 쑥부쟁이 해어진 꽃무더기도

기운을 다 잃은 터 맥없이 끌려 나온다

흙 바닥을 기는 풀넝쿨이 이파리는 푸르지만

화단을 뒤덮기 전 말려야 하는 불청객이다

목장갑 낀 손으로 넝쿨을 뜯어 올리면 부드득거리며

살려줘요 하는 비명이지만 한번 손갈퀴에

옆으로 뻗은 열 뿌리 달려 나오는 재미에 못들은 척이다

솔씨의 날개 타고 뿌리내린 손가락만한 아기소나무

꽃밭 가운데 거인같이 자랄까 봐 청초해도 잡풀일 뿐

한 팔만 쑥 자라 오른 사철나무 가지도 사철 푸르겠지만

모양을 못 갖춰 전지가위 안에서 아프게 베인다

코스모스가 허리케인에 처형당한 듯

몇 자락 안 남은 꽃송이가 폐허 속 노숙자다

이러저리 쓰러져있다 뿌리 채 뽑힌다

지난 계절 명랑했던 화단은 묵상 중

가을 볕에 흙 빛이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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