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폭설
조성자
시월 폭설로 한 쪽 어깨가 찢어진 아그배나무
살가죽 위로 눈 녹아 쓰리다
지나던 바람 사마리아인처럼
압박붕대로 둘둘 감기며 지혈을 하고
햇살 한 컵 받아 국화 향 진통제를 먹인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낮 꿈을 꾼 듯
뒷목을 긁적이며 부스스 일어선다
마주보고 서 있는 개나리도 휜 등을 편다
제 몸의 한 쪽을 번개 맞아 찢기고
통으로 인식되는 존재감
부러진 뼈 대신 쇠심을 대고도
한 시절은 잘 가더라 칙칙폭폭 칙칙폭폭
불가항력의 구름기차를 타고 넘다 넘다보면
공평의 나라에 풍덩 빠진다는 것만을 메모하고
무지한 채로 일어서거라 나무야
흑기사처럼 무모해지거라 나무야
연신 긴급구조요청의 사이렌이 울리는 암흑기에도
어느 유순한 인생의 안거를 내려칠까 궁리 중일지도
가을과 겨울이 눈인사 나누는 이 맑은 평안도
속내를 감춘 숨고르기의 작전타임인지 모른다고
불안의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는 아그배나무
너덜너덜한 어깨쭉지로 빨간 아그배가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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