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소란스런 대웅전** 내가 뭐랬어 대웅전이 시끌벅적할 거라 했어 안 했어 특히 이맘때 꽃 피는 봄쯤에는 휘청대는 오백나한의 그림자들이며 십자가에 흥건한 피 비린내가 그리고 깊은 산 속 법당의 괴괴한 정적이 당신 맘을 들쑤실 거라 했어 안 했어 계곡에 부는 봄바람도 봄바람이지만 팥빙수보다 달고 살.. 詩 2009.02.25
|詩| 종이배와 보름달 기어오르는 비법 하나로 담쟁이 덩굴이 까칠한 겨울에 달라붙는 동안 종이배는 떠납니다 보름달이 둥실 두둥실 기류 따라 흘러가는 동안 만큼은 눈도 안 오고 비도 안 오고 안개도 끼지 않습니다 종이배가 당실당실 춤추듯 물길 따라 여정에 오른 만큼은 밤하늘이 무진장 화창하고 은빛 구름도 없고 .. 詩 2009.02.10
|詩| 봄과 겨울 사이 나무와 꽃 사이에서 고심하는 사람들. 추위를 이겨내는 요령을 모르거나 제대로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입춘대길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내 누이동생 같은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이 서성이는 틈새입니다. 물과 불의 본질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산소와 수소의 체감온도가 올라가.. 詩 2009.02.06
|詩| 도시의 겨울 도시는 불면의 밤에 도사리고 앉아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에 빨간 핏발이 선다 도시는 초저녁에 이미 까무러쳤어 너무 조용해요 소음이 다 사라지고 난 도시는 너무 미치광스러워 도시는 달빛도 밤바람도 사랑도 명상도 모조리 거절한다 도시가 행글라이더처럼 뛰어가다가 절벽을 벗어.. 詩 2009.02.03
|詩| 음산한 사랑** 사람 하나 없는 뉴저지 북부 해변에 지금 당장이라도 가 보면 알 수 있다 무작정 비상하는 생명들이 남긴 비릿한 흔적 그 숱한 발길들이 겹겹이 화석으로 남아도는 당신 의식 속 가장 내밀한 장소에 가 보면 겨울 파도 아우성에 머리칼 갈라지는 뉴저지 북부 해변을 오늘이라도 가 보면 .. 詩 2009.01.26
|詩| 비단실 물결 거미줄이 혹한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요 이것은 차마 차마 정말이지 추위가 몰고 오는 건드릴 수 없는 천상의 외로움이거나 뻔뻔스런 기쁨이랍니다 가늘고 끈적한 그러나 아주 힘찬 거미줄의 생존, 그 삶의 사명감이 주는 공허는 어떡해야 하나요 © 서 량 2009.01.23 詩 2009.01.23
|詩| 진눈깨비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 새하얀 눈과 우중중한 비가 앞을 다퉈 경쟁을 벌리는 장면. 뒷덜미에 갈기가 성성한 사자 두 마리가 서로를 힘껏 물어뜯는 순간순간이 무서워 죽겠어. 아주아주. 산지사방 음흉한 쥐색 뿐이에요. 벌거벗은 나무들이 섹시한 다리를 하늘 쪽으로 거미줄처럼 연.. 詩 2009.01.04
|詩| 기축년을 위한 두 개의 신년시 고개를 힘차게 들고 --- 서울대미주동창회보 1월호 표지시 겨울이 막바지를 지나고 관악구 신림동은 총명하고 부드러운 능선이다 종로구 연건동에도 Veritas lux mea 진리는 나의 빛, 진리 말고 친구여 이보다 무엇이 더 밝겠는가 동짓달 기나긴 밤 홀연히 사라지고 눈부신 기축년이 왔는데 서울이 부스스 .. 詩 2009.01.02
|詩| 몸풀기 꽁꽁 얼어붙어 수정 빛으로 번득이는 고드름 끄트머리부터 끊어지거나 뜨겁게 녹아 떨어지거나 온순한 격정으로 아무런 상처 없이 전신이 떨리는 추위, 추위에 턱까지 떨리네 이빨이 따각따각 부딪히는 초저녁 눈발이 휘날리네 희끗희끗, 미쳤어 정말, 이리와, 가까이 와서 몸을 풀어 봐.. 詩 2008.12.24
|詩| 숨쉬기 혹은 박자 맞추기 우주 변두리가 들쑥날쑥 톱니바퀴 모양으로 생겼어요 코스모스 꽃잎 여덟 개 울퉁불퉁한 모습 진분홍 꽃잎 요염한 가상자리 숨을 들어 마시고 내쉬는 사이에 드르륵드르륵 드럼 소리 들려요 챙챙 쿵 오픈 심발이며 대북 소리가 퍽퍽 터지네요 당신의 박자관념은 병적으로 산뜻해 이름 없는 나뭇잎이 .. 詩 200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