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포도의 비밀* 포도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포도는 늘 상큼해요 세상 모든 포도는 가짜라는 최근 보도가 있었고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달다는 소문도 있어요 포도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재미 적다는 구호를 외치며 광장에 떼를 지어 뛰쳐나와 서로를 공개적으로 사랑한다 포도의 단결심은.. 詩 2011.09.16
|詩| 떨새* 쿵! 쿵! 팀파니 소리 들린다 현(絃)은 미세한 빛을 파고드는 먼지일 뿐이야 들짐승 한 마리 눈 비비며 일어나다가 조금 더 자려고 돌아눕네요 음악이 유성처럼 둥둥 떠다니네 멜로디가 들리지 않아요 대위법이 이런 건가요 구름이 엉겨서 당신 옆얼굴처럼 보일 때 구름까지 쪼르르 날아가.. 詩 2011.09.13
|詩| 조용한 비명** 당신 머리칼 끝이 부처의 엄지, 검지 손가락 동그라미 모양으로 휘휘 말리고 있네. 해일이 발생하는 동안만큼 며칠이나 밀린 병상일지도 법원에 제출할 정신감정서의 결론도 멀찌감치 밀려난다. 시야가 뿌옇다네. 추억이라는 것도 산화작용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아시게. 누군가가 필연적.. 詩 2011.09.07
|詩| 빛이 없는 자리*** 빛이 함몰한 자리에 가 보았다 맨눈에 와 닿는 전기현상이며 오묘한 자력이 펄펄 뛰었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얼마 전 빛은 당신 푹 꺼진 눈이나 반듯한 이마는 물론 네 귀가 번쩍 들린 조선시대 기와집 지붕 같은 날갯죽지 뼈를 집적대며 들썩이며 진실처럼 날뛰던 폭풍이었다 빛.. 詩 2011.08.31
|詩| 충격 이후* 늘 적재량이 문제였다 울컥거리는 대동맥의 펌프질 횟수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이었지 미역 줄기 신경조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세로토닌이 느닷없이 중추신경에게 불구속입건을 당하는 형국이었다니까 사랑의 농도에도 치사량이 있대요 괜찮아? 응, 그런대로 견딜 만해 파자.. 詩 2011.08.17
|詩| 가역반응* 당신이 웃을 때 내 뇌가 울리도록 크게 웃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꾀꼬리거나 접동새거나 천둥 벼락 같은 목청으로 와지끈 소리쳐 울어도 괜찮다는 느낌. 작년 여름이 기울 때만 해도 그랬지. 온갖 요정들이 기생잠자리 같은 투명한 날개를 반짝이며 쏘다니는 원시의 숲이 어느 아침 감쪽.. 詩 2011.08.15
|詩| 마음 먹히기*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을 때 이럴 거에요 2월 삭풍이 당신 머리칼을 야금야금 뜯어먹을 때도 마찬가질 걸 쳐들어오는 놈은 누구며 침범 당하는 놈은 누구지 박목월이가 떠들어대던 밤 구름도 멀쩡한 달을 짓이겨 밟고 갔잖아 잘못했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으세요 어서 눈 들어 하늘을 보니.. 詩 2011.08.08
|詩| 찬물 세수* 쭈그리고 앉아서 대야에 고개를 푹 박고 세수를 할까 하는데 냄새 좋은 비누로 콧잔등을 박박 문지르고 물이 입에 닿으면 푸푸 소리를 내야겠어 펌프 물을 모아두는 네모난 시멘트 틀에 사람 얼굴만한 바가지 하나 둥둥 떠 있어요 그 옆으로 앵두나무 가는 가지들이 비단실처럼 늘어져 .. 詩 2011.07.26
|詩| 나뭇가지 사이로 치즈 냄새 풍기는 피자 모양으로 먹기 좋게 해를 쪼가리 내는 장본인은 단지 내게 가까이 있다는 강력한 이유로 버티는 나무다 우뚝 선 나무 해를 구획하는 나뭇가지가 내 망막에 폭삭 담긴다 해를 먹어야겠다 그러나 나 해를 가까이 할 수 없다 구름아 어서어서 해를 가려다오 나야 참 .. 詩 2011.07.22
|詩| 작은 장미 당원(黨員)이라면 누구나 입에 한 뼘 남짓한 장미 가지를 질끈 물고 무도회에 잠입했다. 검붉은 장미가 리드미컬하게 흔들린다. 그들이 싸락눈 쌓이는 공원 벤치에서 남의 눈을 피해 앞만 바라보며 어깨를 나란히 무슨 말인지 주고 받을 때 장미의 향기가 얼마만큼 군중을 제압할 수 있는.. 詩 2011.07.18